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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쪽이 진짜 공양왕릉" 역사싸움 다시 불붙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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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비운에 숨진 고려 마지막(34대) 공양왕의 진짜 무덤은 어디에 있나-.각각 '공양왕릉'을 갖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와 강원도 삼척시 사이에 해묵은 진릉(眞陵)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역사적 명소를 서로 빼앗길 수 없다는 자존심 경쟁에다 관광객 유치라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고양시와 시의회.시민단체는 지난 10일 원당동 공양왕릉에서 고려 궁중 의식으로 위령제와 능제를 지내고 학술논문을 발표하면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에 대해 삼척시는 역사적 기록을 들어 고양시측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 고양시 주장=공양왕 위령제를 주최한 고양 향토문화보존회 이은만(李殷滿.60)회장은 "1970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고양릉은 규모나 형식, 석물 배치 등을 감안할 때 진짜 무덤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왕릉 주변엔 왕릉골.반나절릉 등 공양왕과 관련된 지명이 많고 망국의 한을 품은 공양왕과 왕비가 함께 연못에 뛰어들어 자결했다는 전설도 전해내려 온다는 것이다.

이번 능제에서 '고려 공양왕과 고릉(高陵)'이란 논문을 발표한 고려대 오종록(吳宗祿.46)교수도 "세종실록 등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고양에 공양왕이 모셔져 있다"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이밖에 진릉의 근거로 ▶왕비와 쌍릉(雙陵) 형태로 나란히 모셔져 있고 ▶석물과 비석이 고려 말 형태를 그대로 지닌 점 등을 들고 있다.고양 향토문화보존회는 앞으로 매년 가을 공양왕릉제를 성대히 열기로 했다.

◇ 삼척시 반박=조선왕조실록에 조선 태조가 삼척에 귀양 중인 공양왕과 아들 2명을 살해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데다 삼척 공양왕릉 옆에 아들의 묘가 나란히 있는 점으로 미뤄 삼척의 능이 진짜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삼척시 관계자는 "공양왕릉이 고양시에 있다고 세종실록에 나오지만 시신이 옮겨졌다는 사실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조선 중기 삼척부사로 내려온 허목이 쓴 향토 역사서인 '척주지'에도 '공양왕의 무덤이 삼척에 있고 산지기가 지금까지 왕릉을 지키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삼척 공양왕릉은 1837년 삼척부사가 봉분을 확대한 뒤 매년 음력 4월 17일에 제사를 지내왔으며 지금은 유도회(儒道會)가 제사지내고 있다. 삼척시는 올해 국.도비 7천5백만원을 지원받아 공양왕릉 일대를 정비하고 있다.

삼척시립박물관 김태수(金泰水.42)학예연구사는 "진짜 무덤인지의 판단은 시신이 묻혀 있는 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고양시에 있는 무덤이 왕비의 무덤과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나중에 가묘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고양.삼척=전익진.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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