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8일-수능 부정] '대물림 부정' 규모 밝히기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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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 휴대전화 커닝 사건'은 광주광역시 C중 동창들이 주도해 6개 고교생들을 부정행위에 끌어들여 벌인 것으로 경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경찰은 지금까지 ▶주동자 22명 ▶답안 송수신 조인 '선수'39명 ▶돈을 내고 답안을 수신하는 '후원자'42명 ▶고사장 밖에서 답안을 보내주는 '도우미' 37명 ▶휴대전화 구입 때 명의를 빌려준 대학생 1명 등 모두 141명을 적발하고 이 가운데 12명을 구속했다.

◆ 수사 착수=수능 하루 전인 16일 오후 112 상황실로 걸려온 제보전화가 단서가 됐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한 고교 3년생의 집을 덮쳐 휴대전화번호 60개와 주동자 8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경찰은 이들 전호번호 중 33개가 3명의 이름으로 개설됐다는 점도 확인했다. 경찰은 수능이 시작된 17일 오전 9시40분쯤 광주시교육청에 수험생 8명을 임의동행 형식으로 조사하겠다고 통보했으나 시험 중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경찰은 18일 오후 이동통신사에서 해당 전화번호로 오간 문자메시지 중 수능 답안이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튿날 제보자가 지목한 주동자 2명을 붙잡았다.

◆ 중간 수사 결과=지난 9월 중순께 광주 S고 3년 배모(18)군 등 2명은 '커닝 도사'로 소문난 중학교 동창인 C고 김모군을 찾아가 '수능 커닝 부정조직'을 만들자고 제의, 6개 고교 22명으로 '원멤버'를 구성했다.

이들은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 과목당 50만원을 지급하면 수능 2~3등급까지 올려주겠다며 접근해 후원자 42명을 모집했다. 1인당 30만~90만원씩 2085만원의 '후원금'을 거뒀다. 또 중상위권 학생들에게 "실력이 모자라는 과목을 보충해 주는 대신 자신있는 과목의 정답을 보내 달라"며 선수를 확보했다.

광주 C고와 K고 2년생 후배들에게는 "성공하면 보답하겠다"며 도우미로 끌어들였다. 이들의 중.고교 선배인 대학 1년생 7명은 도우미들 감독으로 나섰다. 이어 후원금으로 송신이 간편한 일명 선수용 휴대전화 50대를 주문했다. 이들은 전국 모의고사와 수업시간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송수신 요령 등을 예행 연습했다. 수능 하루 전인 16일 오후 후배들을 모아 수험생의 홀짝형 문제 유형을 가르쳐 주고 최종 연습을 했다.

수능 당일 선수들은 휴대전화 두 대씩을 가지고 고사장에 들어가 한 대는 팔뚝에 고정시켜 '톡톡'두드리는 방식으로 후배 도우미들에게 답을 전송했다.

다른 휴대전화로는 도우미들이 보내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도우미들은 이어폰 수신조, 기록 분석조, 정답 송신조로 역할을 분담해 수험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남은 의혹=경찰은 현재 휴대전화 커닝 사건과 대리시험 등 두 갈래로 수사를 펴고 있다.

커닝 사건과 관련해서는 ▶수년 전부터 '대물림'됐다는 의혹▶불량서클 '일진회'나 전문 브로커 또는 학부모 개입 여부▶가담 규모 등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커닝 사건에 가담한 재수생과 대학생들이 지난해의 수능 부정과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도우미의 관리를 맡은 대학생 Y씨는 "지난해 수능에서도 올해와 비슷한 방법으로 조직적인 커닝이 있었다"고 밝혔다.

후원자들이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거액인 수십만원을 부모의 동의 없이 구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수능시험 이전에 커닝 부정에 관한 고발과 제보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녔다는 사실로 미뤄 학교나 교사들도 부정행위의 가능성을 사전에 미리 파악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가담 규모에 대한 의문도 풀어야 할 대목이다. 주동자로 가담했다 중도 포기했다는 김모군은 "가담학생이 230~240명이고 후원자로부터 받은 돈도 3000만~4000만원에 이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대리시험과 관련, 경찰은 수능 대리시험을 의뢰한 주모(20)씨와 대리시험을 치른 김모(23)씨를 상대로 시험 브로커 등이 개입했는지를 캐고 있다. 주양이 지난해 11월 인터넷 채팅으로 김씨를 알게 돼 수능 전날인 지난 16일 김씨를 처음 만났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올 9월 이미 송금한 점에 비춰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간에서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조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최기문 경찰청장은 24일 수능시험 부정행위에 대한 각종 소문의 진상을 철저히 수사하도록 전국 지방경찰청에 특별지시했다.

최 청장은 수능시험 부정행위와 관련된 ▶첩보 수집 강화▶인터넷 게시판 정밀검색▶신고 민원의 신속한 처리와 관련자의 엄정한 사법 처리를 강조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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