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포장김치 1호 ‘종가집 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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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1980년대 정부는 김치의 세계화를 꾀했다. 그러려면 언제 어디서나 맛이 다르지 않도록 표준화가 필요했고, 바다를 건너 수출하려면 신선하게 수송할 수 있는 특별한 포장도 있어야 했다. 세계에 널리 내세울 수 있는 브랜드도 필요했다. 투자 여력이 있는 민간 기업을 수소문했고, 당시 정부는 소비재 분야에서 노하우가 있었던 두산에 이 일을 맡겼다.

두산은 인간문화재 38호이자 조선 궁중음식 전수자인 고 황혜성 고문 등 김치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받아 표준화된 조리법을 만들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온 손맛을 표준화한다는 의미에서 브랜드를 ‘종가집’으로 정했고, 브랜드 로고에 기와지붕을 넣었다. 87년 강원도 횡성군 묵계리에 횡성공장이 준공되면서 국내 포장김치 1호 ‘종가집 김치’가 처음 출시됐다. 세척·포장은 자동화설비로 하지만 김칫소를 넣는 것은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해야 했다. 청결을 강조하기 위해 생산복에서 머리카락이 세 번 적발되는 현장 작업자는 무조건 퇴사시키는 ‘삼진 아웃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가장 큰 난관은 포장이었다. 김치에서 탄산가스가 생겨 비닐팩이 부풀어 오르다가 터지는 경우가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한 끝에 88년 비닐팩 안의 공기를 빼는 진공포장 방법을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89년에는 탄산가스 흡수제를 비닐팩 안에 집어넣는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서 수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포장김치 시장이 안정 단계에 접어든 99년 두산은 김치를 소비자 앞에서 버무려 판매하는 ‘실연 매대’를 도입했다. 직접 보여 주면 품질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99년 1100억원 규모였던 가정용 상품김치 시장은 실연 매대 도입 후 1500여억원 규모로 확대됐다.

김치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3년여간의 연구 끝에 2005년에는 유산균 ‘류코노스톡’ 배양에 성공했다. 류코노스톡 균을 찾아내기 위해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맛집에서 김치를 얻어 연구했다. 전북 남원의 한 유명 맛집에선 사흘간 꼬박 주방의 궂은일을 도운 후에야 김치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얻어진 류코노스톡 균은 김치를 시게 하는 산패균의 번식을 억제하고, 아삭하고 시원한 맛을 오랫동안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2006년 회사가 두산에서 대상FNF로 바뀐 후에도 종가집 브랜드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종가집 김치는 지난해 약 2800만 달러(약 320억원)어치가 중국·일본·유럽에 수출됐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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