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웨이밍교수·이대 여성학 교수들 페미니즘 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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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세계적인 유학자와 한국의 페미니스트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예상대로 불꽃튀는 논쟁이 벌어졌다.유학을 생태주의와 페미니즘 등 현재의 쟁점들과 결합해 전세계적으로 소개한 미국 하버드대 옌칭(燕京)연구소 소장 뚜웨이밍(杜維明)교수가 이화여대 여성학·여성철학 교수들과 만나 치열한 논전을 벌였다.

지난 6일 이화여대 인문관 111호에서 열린 '유학에서 본 페미니즘'이라는 다산(茶山)기념철학강좌에는 국내 원로.중진철학자와 여성학도 2백명이 이들의 논쟁을 지켜보았다. 명경의료재단(이사장 황경식)의 초청으로 한국철학회(회장 손봉호)가 주최한 다산(茶山)기념철학강좌 세번째 자리이다.

"한국 여성학의 보루 이화여대에서 페미니즘을 강의하는게 긴장된다"고 말문을 연 그는 날카로운 토론이 이어지는 내내 표정을 풀지 못했다.

杜교수의 이날 강의 요지는 '모든 사물이 그렇듯 유학도 정체적인 것이 아니며 진화적'이라는 전제 아래 '유교의 인본주의가 성평등을 포함해 인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만날 수 있다'는 것. 비록 '예비적 고찰'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杜교수는 페미니즘이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을 비판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 근대를 넘어서는 탈근대 문제의식과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인간다움(仁).예의(禮).공동체 등 인문주의적 전통이 탈근대를 지향하는 페미니즘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토론에선 혹독한 반론이 여럿 나왔다. '유교적 가족주의가 서구 페미니스트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겠지만 아시아 여성에겐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전제한 김혜숙 교수(이화여대.철학)는 杜교수의 논리가 서구의 관점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개인적 윤리에 초점을 맞춘 유교가 정치적 프로그램이 될 때에는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펀치를 날렸다.

이혜경 박사도 '근대화에 유교가 기여한 것이 많다'는 杜교수의 주장과 관련,"그에 앞서 유교가 어떻게 반성.해체됐는가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동아시아 근대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유보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페미니즘의 기본틀은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개체성 속에서 그 원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남성계보의 연속선상에 있는 유교가 정체성을 유지하며 페미니즘을 만날 수 있을까"라며 杜교수의 주장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杜교수는 이에 대해 "전근대적 요소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있은 후 새로운 탐색을 하는 것이 옳다"고 밝히고 유교의 양보할 수 없는 궁극적 가치는 '인간화 학습'이라는 포괄적 해석을 통해 유교와 페미니즘의 접점 찾기임을 다시 강조했다.

논쟁을 지켜본 사회자 장필화 교수(이대 여성학연구소 소장)는 "杜교수가 우리의 친구인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서로 짚고 살펴보아야 할 쟁점을 많이 남겨놓은 채 세계적인 유학자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과 격론은 막을 내렸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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