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6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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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상황산(象皇山).

장보고가 관음사를 지을 것을 명령하였던 산 이름을 상황산이라고 한 것에는 유래가 있다.

장보고는 불교 중에서도 관음사상에 심취해 있던 사람이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에 관해 설법한 부처의 말이 나오는 것은 법화경의 제25품(品)으로 제자인 무진의(無盡意)보살이 부처께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께서는 그 무슨 까닭으로 관세음이라 불리시나이까"하고 묻자 부처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선남자여, 만약 무량백천만억 중생이 있어 온갖 고뇌를 받는다 해도 이 관세음보살이 있음을 듣고 한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른다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알아들어 다 고뇌에서 풀려나게 하나니라."

그리고나서 부처는 덧붙인다.

"…만약 백천만억 중생이 있어서 금은과 유리, 자서, 마노와 산호, 호박 따위의 보배를 구하러 큰 바다로 들어갔을 때 설사 태풍이 그 배에 불어닥쳐 나찰귀(羅刹鬼)의 나라에 닿게 한대도 그 중의 다만 한명이라도 관세음보살 이름을 부르는 자가 있으면 이 사람들 모두 나찰의 고난에서 벗어나게 되나니, 이러한 까닭으로 관세음이라 일컫느니라."

부처의 이 말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의 수호신으로 관세음보살이 자리 잡게 되었는데,또한 부처가 "만약 삼천세계에 도둑이 가득하다고 하더라도 한 상주(商主)가 있어 여러 상인을 거느리고,귀한 보물을 지닌 채 험한 길을 지날 때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마땅히 도둑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니라"라고 말을 덧붙임으로써 관세음보살은 또한 상인들을 수호하는 보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장보고는 신라선단을 거느리는 대 선인이었을 뿐 아니라 또한 대 상인이었으므로 자연 현세불인 관세음보살을 숭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청해진에 제일 먼저 관세음보살을 기리는 '관음사'라는 절을 짓고, 그 절이 안치되는 산을 관음신앙의 본산인 중국의 보타도(普陀島)에 있는 상왕산(象王山)의 이름을 빌려 상황산(象皇山)이라고 명명했던 것은 청해진을 관세음보살의 가호로 현세 속의 이상국과 현실 속의 불정토로 만들려 했던 장보고의 강력한 의지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특히 배를 타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관세음보살에 관한 이야기 하나가 『삼국유사』에 남아 전하고 있다.

"…어느 마을에 보개(寶開)란 가난한 여인이 장춘(長春)이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아들이 해상(海商)을 따라다니다가 소식이 없었다.어미가 민장사(敏藏寺)의 관음 앞에 가서 7일 동안 기도하였더니 장춘이 홀연히 살아서 돌아왔다. 그 까닭을 물으니 '해중에서 회오리바람을 만나 배가 부서져 동행이 다 죽었는데,나는 널빤지를 타고 오(吳)나라에 가서 닿았다. 오인이 나를 데려다 들에서 밭갈이를 시켰는데, 어느 날 이상한 중이 고향사람처럼 와서 은근히 위로하여 나를 이끌고 같이 가다가 눈앞에 깊은 개천이 나타났다. 중이 나를 옆에 끼고 뛰는데 어렴풋이 우리말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벌써 여기에 온 것이다. 저녁 때 오나라를 떠나 여기에 이른 것이 겨우 오후 8,9시쯤이었다.'"

이렇듯 해상들에게 있어 관세음보살은 제일의 수호신이었으며,장보고가 청해진에 무엇보다 먼저 관세음보살을 기리는 절터를 점지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나서 장보고는 바닷가로 내려갔다.

20여년만에 보는 고향의 바다였지만 바다는 여전히 짙푸르고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파도는 흰 포말을 뿜으면서 바닷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고, 그 바닷가에 낯 익은 섬 하나가 보였다.조금섬이었다.

조음도(助音島)라 불리는 그 작은 섬은 장보고가 어렸을 때부터 즐겨 놀던 곳이었다. 썰물 때는 물이 빠져서 육지처럼 자유롭게 건너갈 수 있지만 밀물 때는 물이 차서 배를 타거나 헤엄을 쳐서 건너지 않으면 안되는 섬이었다.

그러나 장보고는 배를 타거나 헤엄을 치지 않고서도 이 섬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대로 바다 속에 들어가 숨을 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장보고는 바다 속으로 50리는 능히 숨을 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물재주가 좋았던 것이었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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