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한국 영화는 '돈먹는 하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장선우 감독의 신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마침내 지난달 31일 촬영을 끝냈다. '마침내'라고 하는 건 촬영 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기 때문이다. 장감독이 'TTL소녀' 임은경을 주연으로 내세워 만든 이 영화는 촬영 기간 10개월에 순제작비만 80억원을 넘겨 역대 최고 제작비 기록을 세웠다.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면 1백억원을 훌쩍 넘길 태세다. 할리우드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한국영화 시장의 덩치로 보면 엄청난 제작비다. 본전을 뽑으려면 전국에서 최소 3백만명은 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이 영화는 당초 예상보다 20억~30억원 정도 제작비가 초과하자 제작사가 난색을 표했고, 그러자 감독이 촬영 도중 잠적하는 '시위'를 벌여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성냥팔이…'의 제작 과정을 보면 한국 영화의 제작 시스템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영화 시장의 성장세에 비해 제작 관행은 여전히 구멍가게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2,3년새 한국영화 제작비가 2,3배 뛰었지만 거기에는 충분히 줄일 수 있는데도 헛돈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합리적인 계산법이 없다는 말이다.

'성냥팔이…'의 경우 다 지은 세트를 허물고 다시 짓기도 했다. 물론 감독의 의도에 맞지 않으면 욕심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사전에 충분히 계산을 하고 작업 과정에 스태프들과 대화를 가졌다면 그렇게까지 낭비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요즘 한국영화들은 촬영 일수가 너무 많다. 외국의 경우 30,40회 전후에서 끝내지만 한국 영화들은 50,60회까지 넘어가기 예사다. 촬영 일수가 늘다보니 인건비.필름값 등 예상을 웃도는 지출이 많다. 여기엔 현장 경험이 적은 신인 감독이 대거 연출을 맡게 된 것과도 연관이 있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가 없다는 점도 큰 요인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스태프들과의 계약을 주급으로 한다. 따라서 촬영일수가 늘수록 인건비 부담이 늘어 사전에 철저히 준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충무로에선 변변한 계약서 하나 없는 건 물론이고 작품당 계약을 하기 때문에 촬영 일수가 늘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한다. 제작비가 뛰는 데도 스태프들의 인건비나 복지는 제자리 걸음을 하는 탓이 여기 있다. 이제 영화계도 시장 규모에 어울리는 합리성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

이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