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연수취업제도 제구실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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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소제조업체의 인력난 완화를 위해 시행되고 있는 외국인 연수 취업제도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외국인 연수 취업제도는 연수기간 2년을 채운 산업연수생들에게 취업자격 시험을 치르게 해 1년간 더 근무할 수 있게 하는 제도. 합법적 취업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산업연수생들의 이탈을 줄인다는 목적으로 지난해 초부터 실시됐다. 하지만 시험 응시율과 합격률이 낮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 낮은 응시율=입국한 지 1년6개월이 지나면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지난해 초부터 올 9월 말까지 시험을 치를 수 있는 5만5천여명 중 실제 응시자는 겨우 30%선인 1만7천여명.

이 중 1만2천여명이 합격, 결국 이 제도를 통해 '합법적' 취업자가 된 연수생 인력은 전체 대상자의 23%에 불과했다. 시험을 포기하거나 낙방한 연수생 중 절반 정도가 불법체류자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응시율이 낮은 것은 만만찮은 난이도와 고용주들의 추천 회피 때문.한국어로 된 시험을 치르는데 부담을 느낀 연수생들이 스스로 포기하거나, 이들의 수험 뒷바라지에 여유가 없는 고용업체들이 추천을 꺼리고 있는 것이다.

인천 남동공단의 K주물업체 대표는 "수험준비를 위해 몇주간 연수생들을 잔업과 휴일근무에서 빼면 당장 생산에 차질이 온다"고 말했다.

◇ '시험을 위한 시험'=어학시험 성격이 짙다 보니 합격률도 중국동포 연수생을 제외하고는 높지 않다. 중국동포가 대부분인 중국 연수생들이 92% 이상의 합격률을 보였지만 나머지 국가 출신은 68%에 그쳤다.

시험내용도 형식적이다. 공구 이름 등 산업현장에 필요한 지식을 묻는 문제가 절반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한국의 전통의상이 뭐냐''지하철에서 누구에게 제일 먼저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가' 등과 같이 취업.기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들이다.

◇ 대책=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자격시험을 없애고 업체 추천만으로 취업자격을 주도록 정부에 요청했다. 또 1년으로 된 취업기간도 2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인력 정책을 둘러싼 정부 부처간 이견으로 아직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연수취업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고용허가제 도입 등 외국인 인력 정책의 전체적 방향이 우선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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