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장관급회담 수용] 또 '북한 입맛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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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차 장관급 회담을 금강산에서 열기로 결정한 정부에 쏟아지는 비판의 표적은 원칙없이 북한에 끌려다니는 대북 협상 태도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당국 차원의 남북회담을 금강산에서 열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며 당분간 냉각기를 갖겠다던 정부는 30일 입장을 바꿔 북측 요구대로 금강산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번복과정에는 당국회담의 소강상태가 장기화돼 겨울잠에 들어가는 상황을 피하려는 고심의 흔적도 배어난다. 지난 3월 5차 장관급 회담이 무산된 이후 반년 동안의 공백기를 겪은 경험도 정부로 하여금 서두르게 한 요인일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고유환(高有煥)동국대 교수는 "회담에 어떻게 마주앉았느냐보다 회담 결과를 놓고 평가해야 할 것"이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대북정책의 결정과정에는 최소한의 일관성과 설득력 있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북측이 지난 12일 이산가족 상봉의 연기 이유로 미국의 반(反)테러전쟁에 따른 정부의 비상경계태세를 내세우면서 주장한 '서울=불안한 곳, 금강산=안전한 곳'이란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꼴이 됐다. 서울.평양 교차개최를 관철해 장관급 회담이 갖는 '상징적 지위'를 살리겠다던 다짐도 공언(空言)이 됐다.

송영대(宋榮大) 전 통일원 차관은 "회담장소마저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협상과정에서 북한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며 "금강산 수용은 우리의 비상경계가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또 박명서(朴明緖.경기대 교수)한국통일안보학회장은 "정부가 자꾸만 북측에 끌려갈 게 아니라 좀더 신중히 국민여론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비판여론 속에 회담에 나서는 정부는 상당한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북한이 허심탄회하게 나와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 향후 남북관계 일정을 다시 짤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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