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실업률 사상 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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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본의 실업률이 지난 9월 사상 최고인 5.3%로 치솟았다. 정부측은 실업률이 한달새 0.3%포인트나 상승한 것은 34년만의 일이라며, 긴급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고용사정이 급격히 악화한 것은 정보기술(IT)경기위축으로 인해 대기업들의 감원과 제조업체들의 중국 이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이 본격화되면 실업률은 더 높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 중에는 스페인(13.0%), 프랑스(8.5%), 독일(7.9%) 등이 높다.

◇ 실업대란 눈앞에 닥쳤다=실업자 3백57만명 중 92만명이 1년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실업자는 지난해에 비해 12만명이 더 늘어났다.

일본 정부가 고령자 간병, IT 등 신산업을 일으켜 실업자를 흡수한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소비가 위축되고 이것이 기업경영에 부담을 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정.재계도 구조조정의 여파로 실업률이 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은 했으나 속도가 너무 빨라 고심하고 있다.

◇ 장기불황 언제까지=일본은행은 성장률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는 1% 내외이나 실제로는 -0.9~-1.2%가 될 것이며, 내년에는 잘하면 0.1%, 못하면 -1.1%까지 떨어진다는 것이다.

비관론의 근거는 IT경기 위축.미 테러사건.광우병 등이다. 이런 악재가 그동안 소비진작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던 정책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매달 큰 폭의 감소를 거듭하고 있는 무역흑자도 심상치 않은 변수다. 일본 정부는 올해 중 무역.서비스 수지가 20년만에 처음으로 분기별 적자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 경제가 다 죽은 것은 아니다=IT 이외의 업종에서는 흑자를 내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2000년 7월~2001년 6월 중 전국 법인의 신고소득은 42조7천억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12.1% 늘어났다. 흑자기업의 비율도 31.1%로 무려 10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면 적자기업이 신고한 손실 총액은 27조2천억엔으로 같은 기간 중 7% 줄었다. 세금 신고하는 것만 봐서는 법석을 떨 만큼 경기가 급랭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 개혁 견뎌낼 체력이 문제=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공약인 개혁사업은 내년부터 본격화된다. 이미 고이즈미 내각은 새 국채발행 한도를 30조엔으로 묶어두며 공공사업을 가급적 억제키로 약속했다. 악성 부실채권 12조엔을 2년내 정리하겠다는 스케줄도 국제적으로 공표한 상태다.

그러나 중대 수술이 시작되기도 전에 환자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일본은행을 채근해 돈을 풀고는 있으나 금융권에 고여 있을 뿐 기업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경기부양으로 방향을 틀자니 개혁공약을 근본적으로 허물어야 할 판이다.

일본 정부가 악화하고 있는 경제현실을 감안해 절충안을 낼지, 뽑은 칼을 그냥 휘두를지는 예산편성이 확정되는 연말께 가려지게 된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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