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최고위원 인터뷰] 레임덕은 쇄신안할때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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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얼마 전부터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은 다시 투사(鬪士)가 됐다. 그는 당내 반(反)동교동계 세력의 기수다.

지난 9월 24일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한 권력 실세들의 의혹 해소를 요구하며 "제대로 밝히지 않고 은폐할 경우 내부에서 단호히 투쟁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그의 발언 수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29일 인터뷰에서도 그는 동교동계가 자진 해체하지 않을 경우 반 동교동계가 태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8일 저녁 민주당 소장파 의원 5명을 만났다. 이들이 '당이 엉망인데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느냐'고 성토하더라"는 말로 자신이 계속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인터뷰는 그의 캠프격인 서울 여의도 한반도재단 사무실에서 1시간40분 동안 진행됐다.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는데, 재.보선에서 진 상황에서 당정을 개편하면 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이 가속된다는 우려가 있다.

"(목소리를 높이며)국정 쇄신을 해서 레임덕이 오는 게 아니라 안하면 레임덕이 온다. 국정 쇄신을 해야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통치 기반이 확립된다.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많이 남았다. 레임덕이 오면 그 후유증은 엄청나다."

-한광옥(韓光玉)대표가 취임한 지 겨우 한달이 지났을 뿐인데 또 바꾸나.

"선거 패배는 지난 9월의 당정 개편이 실패한 것임을 증명한다. 韓대표야 얼마 안 됐으니 그렇다치고 나머지 당직자라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재.보선이 끝난 직후 후보 조기 가시화론이 힘을 얻고 있는데.

"최근 韓대표가 청와대로 들어가 후보 조기 가시화를 언급했고, 곧바로 동교동 계보라는 두세명이 이에 화답했다.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韓대표는 순수하지만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자아내게 했다."

-조기 가시화가 동교동계의 짜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나.

"후보 가시화로 방향을 트는 것은 당정 쇄신 요구를 회피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 개편은.

"선거는 당이 우선 책임져야 하고 청와대는 대통령이 직접 판단할 문제이니 일정 시점까지는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발언은 자제하겠다. 하지만 정부 경제팀은 경제에 대한 신뢰감을 저하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

-개편 시기는 언제가 좋다고 보나.

"현재 상황이 심각하다. 결단을 내려 아주 불가피한 최소한의 부분만 남겨야 국민이 용납한다. 연말의 당정 개편이야 내년 월드컵과 지방선거를 위해 어차피 예정돼 있던 건데 그것을 보고 쇄신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동교동계 해체를 요구하는데, 책임을 모두 동교동계로 돌리는 게 옳은가.

"동교동계는 정권 교체에 희생과 기여를 많이 했다.하지만 동교동계가 인사를 독점해 전횡했으며 그 결과는 무능으로 입증됐다. 다음 대표를 누구로 할 것인지를 놓고 동교동계 내부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뒤늦게 아는 식이다."

-동교동계와 맞서기 위해 의원들과 만나거나 힘을 모으고 있나.

"그동안 자격지심 같은 게 있었다. 내가 동교동계와 맞서는 걸 주위에선 대선 경선을 위한 정치적 동기로 해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어제 젊은 의원들과 만났을 때 소극적이라고 욕을 먹었다. 그들은 새로운 민주당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했다."

-앞장서서 깃발을 들 것이냐.

"앞에 서기보다 함께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결단과 희생을 요구받으면 그렇게 한다."

-그러다 당이 동교동계와 비동교동계의 대결구도로 가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안되길 바란다. 서로 고려하고 존중하는 과정이 있길 바란다. 결단해야 한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차기 후보와 김대중 대통령의 차별화가 불가피하다고 했는데.

"정치적인 이득을 보기 위해 차별화하면 국민이 믿어주지도 않는다. 당내 쇄신을 꾸준히 주장하지 않고 있다가 선거 때 차별화하면 그것은 선거 기술일 뿐이다.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또 한나라당이 가만히 있겠느냐."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나. 공정한 경선은 가능하다고 보나.

"지난해 8.30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 때 돈과 지역의 위력을 경험했는데 참담했다. 현재의 민주당 권력 구조와 대의원 분포로 가면 불공정 경선이다. 대선에서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

****공정 경선 위해선 대의원수 늘려야

-호남지역 대의원수가 너무 많다는 것인가.

"지역뿐 아니라 특정 세력이 대의원들을 장악하고 있다. 대의원은 현재 1만명이 안되는데 10만명 이상 돼야 한다."

-당권.대권 분리론에 대한 입장은 뭔가.

"후보와 총재를 분리해야 한다. 일부에선 태양이 둘일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러면 정당 민주화를 못이룬다. 선거 때는 총재와 후보를 겸하고 나중에 총재직을 내놓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당선되면 총재직을 사임한다고 했지만 안했다."

-金위원이 경선에서 끝까지 가지 않고 다른 후보를 밀 것이란 주장도 있다.

"(강력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나는 한 길을 살아왔다. 현재 대중적 지지도 또는 당내 지지도가 좀 높다고 그쪽으로 가는 게 아니다. 국민은 믿을 수 있는 리더십을 원한다. 국민 통합이 중요한데 지역주의로는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정치자금서 자유롭지 않아 부담

-金위원이 민주당을 탈당, 개혁 신당을 만들 것이라는 설도 있다.

"난 민주당을 사랑하고 끝까지 남는다."

-'김근태는 과격하고 좌익성향이다'는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오해가 있다. 억울하다. 나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깨지 않으려는 합리적 민주주의자일 뿐이다."

-스스로 정치자금에 대해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나.

"그렇지 않아 부끄럽고 부담스럽다. 정치자금을 동원하지 못하면 정치력이 없다고 평가받는 현실이 고통스럽다. 그러나 적어도 로비나 이권 개입을 통해 정치자금을 모으지는 않는다."

정리=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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