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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자회담 복귀 카드' 받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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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미 정상회담 이후 국내외 관심이 북핵 6자회담에 쏠리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원칙을 재천명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위해 북한의 조건 없는 참가를 촉구했다. '6자회담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북측에 던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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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6자회담 언제쯤
- 연내 실무회의 성사에 총력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한.미.중.일 4개국 정상들은 지난 19~20일 연쇄회담을 열고 조속한 시일 내에 제4차 6자회담을 재개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정부는 앞으로 중국.러시아 등과 함께 북한을 설득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다음주부터 미국 등 관련국을 순방하는 것도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방안 등을 협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6자회담이 연내에 열리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회담에 응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 등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2기 외교안보팀이 완전한 진용을 갖추기 전까지는 상황을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1월 말로 예정된 이라크 총선 때까진 미국의 관심이 이라크에 집중될 것이므로 북한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6자회담 전략을 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실무그룹 회의라도 먼저 개최하는 방안이 한.미 당국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 지난 6월 3차 본회담 때 '핵심 쟁점 사항인 핵 폐기의 범위.기간.방식 등에 대해 실무그룹 회의에서 먼저 논의키로 한다'고 합의한 만큼 실무그룹 회의를 열면 북측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도 감안됐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비공식 회담이라도 수용할 용의가 있다는 게 참가국들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연내에 본회담은 안 될지 모르지만 어떤 형태로든 북측과 대화의 물꼬를 트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② 북에 줄 '당근'은
- 북.미, 중유 지원 재개 승강이

6자회담의 재개 여부는 한.미 양국이 북측의 구미를 당길 만한 카드를 내놓을 수 있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최근 우리 정부가 거듭 미국에 '창의적이고, 신축적이며, 현실적인' 안을 내놓으라고 촉구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9월 세부적인 대북 협상안을 마련해 놓은 상태"라며 "이를 바탕으로 북측에 어떤 수정안을 내밀지 미측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서 핵심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핵 폐기 범위와 대상▶검증 방식▶동결 기간▶상응하는 조치의 내용 등이다.

명목상으로는 폐기 대상이, 실제로는 상응조치의 구체적 내용이 최대 쟁점이다. 대상과 관련, 한.미 양국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하고 이를 동결.폐기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다. 북한은 "HEU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상의 내용과 방식을 놓고 북.미가 싸움을 하는 데 협상의 어려움이 있다. 북한은 동결 선언을 하면 미국도 대북 중유 지원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래야 미국을 믿을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미국은 선(先)핵포기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미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편에선 "미국이 중유를 공급하는 제반 행정비용을 대주는 방식으로 참여해 북한을 달래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도 나온다. HEU의 존재를 극구 부인하는 북한을 위해 동결 대상에 '체면을 살려주는 표현'을 넣는 방안도 거론된다.

동결 기간은 한국 6개월, 미국 3개월을 주장하나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③ 북한 태도 바뀔까
- 벼랑끝 전술 고집할지에 달려

북한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부시 미 대통령의 재선에 대해서도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APEC 정상회의가 열리던 지난 20일엔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한국과 미국을 강력 비난했다.

하지만 미묘한 변화의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할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도 "북한 관리들이 최근 중국 측에 '6자회담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고 알려 왔으며, 이 같은 내용이 미.중 정상회담 때 미측에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이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거듭 강조한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도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평소처럼 '김정일'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신 두차례 '북한의 지도자'라고 지칭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0월 대선 후보 TV토론 때도 줄곧 '김정일'이라고 불렀다. 정부 당국자는 "미 대통령이 직접 북에 회담에 참가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다시 부시 대통령의 입에서 '김정일''독재자''악의 축'이란 말이 나오기 전에 협상에 응하라는 주문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북한의 인식 변화다. 이 점에서는 우리 정부도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하나를 양보하면 또 하나를 내놓으라는 벼랑끝 전술식 배짱 외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란 게 한.미 양국의 확고한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이제 공은 북측에 넘어간 상태"라며 "북한도 일단 회담에 나와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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