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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조지 폰게리히텐 인터뷰 원문

중앙일보

입력

미국 뉴욕 맨해튼은 전세계 요리의 경연장이다. 동서양은 물론이고 육·해·공 모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수천여 곳이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사인 미슐랭 가이드가 별 세 개를 준 레스토랑은 다섯 곳뿐이다. 콜럼버스 서클의 트럼프 호텔에 자리잡은 ‘장조지’는 동양의 풍미를 곁들인 프랑스 요리로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세계 10대 세프로 꼽히는 이 레스토랑의 요리사 장 조지 폰게리히텐이 한국의 맛을 찾아 아내와 함께 11~16일 방한한다. 이번으로 세 번째인 그의 한국 방문은 특히 아내의 뿌리 찾기 여정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 마자 앨런은 1976년 의정부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귀국 후 세 살배기 딸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마자는 미국인으로 성장했지만 뿌리를 잊지 않았다. 스스로 한국말을 배우려 애썼고 인터넷과 TV를 통해 한국 음식을 익혔다. 그의 한국 사랑은 남편 폰게리히텐의 한식 사랑으로 이어졌다. 이번 방한 기간 동안 폰게리히텐 부부는 한국 곳곳을 돌며 한국의 맛과 문화를 체험할 계획이다. 이 부부의 한국 여행은 미국 공영방송 PBS가 다큐멘터리로도 제작할 예정이다. 한국 방문을 앞둔 폰게리히텐을 지난달 29일 그의 레스토랑 장조지에서 만났다.

-이번 방한 목적은.

“미국 PBS방송이 한국의 뿌리를 찾아가는 아내의 여정을 찍으러 가는데 함께 가기로 했다. 아내는 먼저 한국으로 가고 나는 중국 상하이 엑스포에 참석한 뒤 뒤따라 갈 예정이다. 아내 덕에 나도 한국 문화와 음식에 열렬한 팬이 됐는데 이번 기회에 한국의 맛도 제대로 느껴보려 한다. 아내와 한국 곳곳을 돌며 재래시장과 맛집도 순례할 계획이다. 벌써부터 설렌다.”

-아내는 어떻게 만났나.

“미국 버니지아주에서 자란 아내는 99년 뉴욕으로 왔다. 영화 배우였던 아내가 사진가 친구의 모델이 됐다. 우연히 그 사진을 봤는데 눈에 확 띄는 모델이 있었다. 그런데 6개월 뒤 내 레스토랑에서 사진으로 봤던 그 모델을 직접 만났다. 한눈에 알아보고 사랑에 빠졌다. (99년부터 사귀기 시작한 이 커플은 아내가 딸을 가지는 바람에 2005년에야 결혼식을 올렸다. 봉게리히텐의 레스토랑 중 하나인 스파이스마켓에서 250명만 초대했다. 아내와의 사이에 9살짜리 딸 하나가 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지갑에 든 딸 사진을 굳이 꺼내 보여줬다.) ”

-아내의 한국 사랑이 유별나다.

“세 살 때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지만 20살이 되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양부모가 입양 때 기록을 모두 보관하고 있어서 17년 만에 생모도 찾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머니는 뉴욕 브루클린에 살고 있었다. 입양시킨 딸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왔던 거다. 이후 아내는 한국을 10여 차례 방문하며 친척도 만나고 고향에도 다녀왔다. 아내는 한식 만들기도 좋아한다. 이번에도 한국 가서 여러 가지 음식을 배워올 거다.”

-집에서 김치도 담아먹나.

“물론이다. 처음 아내와 결혼했을 때 김치 때문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여는데 시체 썩는 냄새 같은 게 났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 냉장고 문을 살짝 열고 뭐가 있나 들여다봤다. 냄새의 진원지는 김치였다. 처음 아내의 김장 솜씨는 좀 맵고 짰다. 그런데 지금은 간이 딱 맞다. 이젠 김치 없으면 못산다. 아시아 음식이 대부분 그렇지만 한국 음식은 특히 중독성이 강한 것 같다. 사골 곰탕도 한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음식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음식 철학은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첫 술의 느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한식은 그런 면에서 살아있는 음식이다. 모든 요리가 제각기 특유의 풍미를 자랑한다. 지루하지 않다. 유럽 음식은 내 입맛엔 밋밋하다. 이와 달리 한식 먹을 땐 “와우! 와우!”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식은 이미 뉴욕에서 인기 있는 요리다.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에 가보면 한식을 즐기는 뉴요커가 바글바글하다. 나도 한식당에 자주 간다.”

-한식 세계화에 조언을 한다면.

“현지인의 입맛에 적응은 하되 전통의 맛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예컨대 프랑스 파리에서 한식당을 연다면 매운 맛은 좀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프랑스 사람은 매운 맛에 익숙지 않다. 그러나 정통 한식의 맛을 희석시켜선 안 된다.”

-당신의 요리엔 동양 풍미가 강하다.

“80~85년 방콕·홍콩·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동안 동양의 맛에 빠졌다. 정통 프랑스 요리는 육류 비중이 높고 기름기가 많으며 무겁다. 이와 달리 동양에선 채소·과일을 많이 쓴다. 내 요리는 두 가지를 조화시킨 것이다. 예컨대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는 프랑스 요리지만 거기에 망고와 생강 소스를 얹으니 산뜻하면서도 환상적인 맛이 나왔다. 간장과 버터를 함께 끓여 나만의 소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동서양의 맛을 조화시키면 무궁무진한 요리가 나온다. 내 요리 사전엔 국적이 없다. 단지 좋은 요리와 나쁜 요리가 있을 뿐이다.”

-요리사가 된 계기는.

“우리 집은 대대로 석탄사업을 해왔다. 부모님도 처음엔 내가 엔지니어가 돼 가업을 잇길 원했다. 그러나 나는 석탄보다 요리가 좋았다. 늘 어머니가 일하는 부엌에서 놀았다. 16살 되던 해 어머니가 내 고향에서 가장 유명한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에 데려 가줬다. 세 시간 동안 이어진 식사는 내 눈을 확 트이게 했다. 평생 요리를 하고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엔지니어 공부를 때려치우고 요리학교에 들어갔다.”

-요리의 스승은.

“내 고향 프랑스 알사스 지방엔 전설적인 요리사가 많다. 운 좋게도 나는 그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프랑스 요리의 국민 영웅 폴 보퀴제, 알사스 지방을 대표하는 세프 폴 애벌랭은 물론 루이 우티에 밑에서도 배웠다. 아시아에서 일한 5년도 내겐 소중한 경험이었다.”

-세계적으로 27개의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비결은.

“뉴욕에 있는 9개 레스토랑만 내가 직접 운영한다. 그 중 최고급은 장조지 하나뿐이다. 다행히 맨해튼 최고의 요리사들이 나와 함께 수십 년 동안 호흡을 맞춰왔다. 새로 문을 연 W 호텔 레스토랑 주방장은 나와 26년 동고동락한 형제 같은 친구다. 나보다 더 내 요리를 잘 안다. 다른 레스토랑은 현지 파트너와 합작했다. 나는 현지 경제 여건을 잘 모르지만 요리에 대해선 잘 안다. 인테리어에서 레서피는 물론 세프 교육까지 내가 직접 한다.”

-한국에 당신의 레스토랑을 열 계획은.

“기회만 허락한다면 기꺼이. 믿을 만한 현지 파트너를 찾고 있다.”


장 조지 누구인가

1957년 프랑스 알사스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알사스는 1970년대 중반 프랑스 요리 혁명 ‘누벨 쿠이진(nouvelle cuisine)’의 본산이기도 했다. 주로 고기를 장시간 조리해온 프랑스 고전요리에 반발해 채소·과일 사용을 늘리는 대신 조리 시간은 줄여 재료의 본래 맛을 살리자는 시도였다.

퐁게리히텐은 알사스 출신인 누벨 쿠이진 1세대 폴 보퀴제·폴 애벌랭·루이 우티에를 사사했다. 80년 태국 방콕의 오리엔탈 호텔 프랑스 식당을 시작으로 5년 동안 홍콩·싱가포르를 거치며 동양의 풍미를 자신의 요리에 가미했다.

86년 뉴욕에서 정통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을 열었다가 실패한 뒤 동양 풍미를 담은 퓨전 프랑스 요리로 대성했다. 뉴욕에 조조·봉·페리 스트리트·66 등을 잇따라 연 데 이어 런던·바하마·상하이 등에도 자신의 레스토랑을 상륙시켰다. 9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조지로 맨해튼 최고 세프가 됐다. 그가 발간한 네 권의 요리책은 아직도 베스트셀러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의 단골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jkm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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