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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릴레이] 노벨상과 휴지통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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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4면

오는 12월 5일은 현대물리학의 핵심 이론인 양자역학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하이젠베르크가 태어난 지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개념 틀인 행렬역학과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인 '불확정성 원리'를 창안한 과학자다.

그는 불확정성 원리를 제창함으로써 19세기의 결정론적 세계관에 철퇴를 가하고 세계를 불확실하며 통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비결정론적인 세계관을 새롭게 도입했다.

전쟁과 테러로 점철되고 있는 현대 사회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모습을 띠고 있다. 혼미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그래도 과학 분야,특히 정밀과학의 절정인 물리학 분야만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일반 사회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 물리학의 세계도 불확실하게 파악할 수밖에 없고, 항상 어떤 일정한 한계 내에서만 예측을 할 수 있다는 폭탄과도 같은 선언을 했던 것이다.

하이젠베르크가 제시한 세계관은 물리.화학.생명과학 분야 뿐 아니라 심리학.철학.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쳐 불확실한 시대를 대변하는 일종의 시대 사조로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의 세계관과 일상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양자 역학은 참으로 황당하고 극적인 분위기에서 태어났다.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기본인 행렬역학을 창안할 때 행렬이라는 수학을 모르고 만들었다. 정규 수학 교육도 받지 않은 그가 양자역학 체계 내의 기본적인 계산법인 행렬 곱셈을 스스로 생각해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논문을 학술지 편집위원에게 보내면서 만약 이 논문에 문제가 발견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그대로 휴지통에 집어 던지라고 하면서 영국 케임브리지로 강연을 떠났다. 당시 편집인이었던 막스 보른은 그의 논문의 중요성을 즉각 알아차렸다. 휴지통에 들어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행렬 역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위대한 논문은 항상 기존의 발상을 넘어서기 때문에 논문이 휴지통으로 가느냐 아니면 노벨상 수상 논문이 되느냐는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다. 특히 행렬역학 논문은 기존 역학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사고 방식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에 나오자마자 사장될 수도 있었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 계절이 되면 우리는 과학 분야에서 언제나 노벨상을 받게 될까하고 탄식하곤 한다.

하지만 과학 분야 노벨상은 기존의 연구를 답습하는 행태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노벨상은 확실한 실험적 결과,이론적 정합성과 아울러 휴지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일탈 노력 속에서만 가능하다.

임경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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