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6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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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장보고는 흥덕대왕에게 계속하여 아뢰었다.

"말을 마치고 나서 바다를 좋아하는 젊은이는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여래의 법에는 어떤 것이 있어 비구들이 그 안에서 즐깁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게도 여덟가지 처음 보는 법이 있어 비구들이 그 안에서 즐기고 있다. 첫째, 내 법안에는 계율이 갖춰져 있어 방일함이 없다. 그것은 저 바다처럼 매우 깊고 넓다.

둘째, 세상에는 네가지의 계급이 있지만 내 법안에서 도를 배우게 되면 그들은 네가지 계급을 떠나 한결같이 사문이라 불린다. 마치 네개의 강이 바다에 들어오면 한맛이 되어 그 전의 이름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셋째, 정해진 계율에 따라 차례를 어기지 않는다.

넷째, 내 법은 결국 똑같은 한맛이니 팔정도(八正道)가 바로 그것이다. 다섯째, 내 법은 갖가지 미묘한 법으로 가득 차 있다. 바닷가에 여러 중생들이 사는 것처럼 비구들은 그 법을 보고 그 법안에서 즐긴다.

여섯째, 바다에는 온갖 보배가 있듯이 내 법에도 온갖 보배가 있다. 일곱째, 내 법 안에는 온갖 중생들이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도를 닦아 열반에 든다.

그러나 내 법에는 더함도 덜함도 없다. 바다에 여러 강이 들어와도 더하고 덜함이 없는 것과 같다. 여덟째, 큰 바다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듯이 내 법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갖가지 삼매(三昧)가 있다. 비구들은 그것을 알고 즐기는 것이다.'"

잠시 말을 끊고 장보고가 흥덕대왕을 우러러보았다. 그런 다음 말을 이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매라 함은 바로 해인삼매(海印三昧)를 가리킴이 아니겠습니까. 바다의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이 모든 바닷물에 비치는 것과 같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의 정심(定心)이야말로 부처님의 해인정(海印定)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대왕마마, 부처님은 바다를 좋아하는 젊은이에게 바로 '법의 바다(法海)'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이나이다. 하오나 대왕마마, 마마께오서는 신에게 천개의 손을 가지고 있어 하늘 아래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나 실은 그 모든 물건들은 신이 가져온 것이 아니라 바로 바다가 가져온 것들이나이다.

바다는 젊은이가 말했던 것처럼 매우 크고 넓습니다. 그 바다에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나라들이 살고 있나이다.그 사람들은 저마다의 말을 쓰고 저마다의 진기한 물건들을 만들고 있나이다. 바다 속에 여러가지 진귀한 보석과 금모래가 있듯이 바다 건너 저세상에는 갖가지 진귀한 보석과 금모래가 널려있나이다.

신은 다만 그것들을 바다를 통해 옮겨온 것에 지나지 않나이다. 따라서 바다로 나아가면 이보다 진귀한 보석들은 무진장 있을 것이며 또한 바다로 나아가면 이보다도 더 아름다운 시와 이보다 더 좋은 그림들 역시 무진장으로 있을 것이나이다."

장보고는 말을 맺었다.

장보고의 말은 초기경전인 증일아함(增一阿含) 팔난품(八難品)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은근히 장보고를 미천하고 무식한 해도인이라고 깔보고 있었던 여러 중신들에게 충격을 가할 만큼 논리정연한 내용이었던 것이었다.

"경의 말이 사실이다."

잠자코 장보고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흥덕대왕은 이윽고 침묵을 깨뜨리며 말하였다.

"바다야말로 천개의 손을 갖고 천개의 눈을 가진 천수보살 그 이상인 것이다. 경의 말대로 바다 속에는 진주와 같은 보배와 수미산(須彌山)이 깃들어있으며 또한 부처님의 말씀처럼 헤아릴 수 없는 해인삼매의 진리 또한 깃들어있는 것이다. 그러하면 짐이 경에게 묻겠으니 경은 이 바다를 위해 무엇을 할 생각인가."

"대왕마마."

그러자 장보고는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마마께오서 신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신은 바다 속에 깃들어 있는 각종 보배와 수미산의 진귀한 보물들을 캐내어 가져오겠나이다. 하늘 아래 땅 또한 넓고 크지만 땅은 그 크기에 있어 한정이 되어 있고, 움직이기가 쉽지가 않아 하루 밤낮을 가더라도 십리도 못갈 정도이나이다. 하오나 바다는 땅보다 깊고 넓으며 그 크기가 무한정하여 움직이는 데에도 매우 빨라서 하루 밤낮을 가면 백리도 속히 갈 수 있을 정도이나이다. 또한 바다에는 큰 배가 있어 물건 또한 한꺼번에 나를 수가 있어 땅 위에서 물건을 나르는 말과 나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나이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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