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 '시리즈 7' 실제 살인 프로그램 제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홍상수 감독 영화 '오,수정'의 첫 장면. 여관에 들어선 주인공은 여자 친구를 기다리면서 액자 뒤에 손을 넣어 보기도 하고 천장의 전등 갓을 쓸어 보는 등 방 안을 뒤진다. 혹 '몰카(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지나 않은지 걱정스러워서다.

성행위를 포함한 타인의 사행활을 엿보고 싶다는 이상 심리(관음증)는 시각 문화의 발달과 함께 그 요구 수준을 점차 높여 왔다. 보통 사람의 실제 성행위를 담은 '몰카' 비디오는 연기에 의한 포르노 영화에 식상한 이들의 은밀한 호기심을 파고 들었기 때문에 바이러스처럼 번질 수 있었다.

한편 유럽 일부 국가의 TV방송은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처럼 24시간 내내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시각적 쾌락에 대한 점증하는 욕망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영화 '시리즈 7'은 TV가 마침내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도록 해놓고 그것을 방영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본다.'적수들(Contenders)'이라는 가상의 TV 프로그램 시리즈 일곱째 시간. 방송사가 무작위로 추첨한 시청자들은 최후의 생존자가 우승자가 되는 '살인게임'에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

주인공인 돈은 임신 8개월의 임산부. 그동안 연승을 거둬온 돈은 이번 한 번만 이기면 명실상부한 챔피언이 된다. 여기에 도전하는 이들은 병원 응급실의 간호사, 실직과 마약중독으로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른 남자, 음모이론을 신봉하는 노인,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18세 소녀, 그리고 말기 고환암 환자인 제프 등 5명이다. 이들은 상대를 죽이려 온갖 작전을 짜고 방송국 카메라는 천연덕스럽게 이들을 쫓아 다닌다.

황당하고 섬뜩한 설정이지만 감독 다니엘 미나핸은 "요즘 TV가 이 정도로 타락했어요"라고 고자질하는 듯하다.그러나 뒤집어보면 TV를 비판하는 포즈를 취하면서 관객의 저열한 쾌락에 맞장구치는 건 아닐까 의심이 간다. 아마 TV쪽에서는 "영화, 너나 잘해"라고 카운터 펀치를 먹일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관객은? 예고편.뮤직비디오 등으로 꾸며진 현란하고 경쾌한 화면들. 그 속에서 무덤덤히 90분간의 살인게임을 즐긴 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당신이야말로 TV의 저속성.선정성에 대한 공범은 아닙니까"라는 질문이 뒤통수를 간지르는 걸 느낄 것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27일 개봉.

이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