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유무역 하겠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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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3일 미국의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미국 철강업계가 수입에 의해 피해를 봤다"고 판정을 내려 10억달러를 수출하는 철강업계뿐 아니라 대미 수출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ITC의 피해 판정은 이변이 없는 한 행정부의 긴급 수입제한조치로 이어질 것이다.우리는 이번 판정의 공정성을 의심하며 미국 철강업계의 문제해결은 외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철강 수입은 1998년 이후 4년째 감소했고,철강산업의 불황과 연쇄도산의 밑바닥에는 자체 경쟁력 약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게 세계 철강업계의 전반적 이해다.

또 ITC의 판정이 나온 날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해 3월부터 미국이 한국산 철강 파이프 제품에 대해 취해온 긴급 수입제한조치가 WTO의 규범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도 이번 판정의 부당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 철강업계의 문제해결은 수입규제가 아닌 미국 내의 구조조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 ITC는 이해관계자들을 참석시키는 공청회를 거쳐 12월 중순에 행정부에 '적절한' 수입규제조치를 건의하게 된다.

그때까지의 기간이 우리에게 열려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기회라는 얘기다. 부당한 수입규제가 실시되지 않도록 정부는 통상외교를 통해, 또 한국의 철강업계는 미국의 수입업계와의 공조하에 수입규제의 부당성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본다.

만일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가 수입규제조치를 취한다면 우리 정부는 의연히 이를 WTO에 제소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는 클린턴 행정부 출범의 제 일성이 '자유무역 확대'였음을 기억하고 있다. 또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들이 세계적 불황으로 보호주의가 득세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을 출범시키기로 하는 등 자유무역체제의 강화에 합의한 것이 바로 이틀 전이었다.

실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ITC의 이번 수입피해 판정이 행여나 '세계의 시장' 미국의 향후 통상정책이 보호주의로 회귀하는 신호탄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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