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무리수' 법원서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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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에 대한 경찰의 정보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제주지방경찰청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는 과정에서 혼란스런 행보를 보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법원이 한나라당 제주지부 간부와 연루 경찰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무리였던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예상된다.

경찰은 구속영장이 신청된 22일 오전까지 이들 2명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와 적용 법률을 놓고 혼선을 빚었다.

이에 따라 검찰의 지휘를 받는 등의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분위기가 반영돼 이처럼 사건처리가 꼬이지 않았느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 무리한 수사=제주지법 심우용(沈雨湧)판사는 이날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조직부장 金모(38)씨와 제주경찰서 정보과 任모(56)경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沈판사는 "이들이 문서를 주고 받은 행위는 관행적으로 이뤄진 정보교환이며 문서 내용도 공무상 비밀이 아니다"고 밝혔다.

沈판사는 또 金씨가 이 문건을 외부에 유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도 사유로 들었다.

결국 재판부는 김홍일(金弘一)의원의 동향에 대한 경찰보고서가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이 문건을 누설한 행위도 공무상 비밀누설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은 보강수사를 벌여 영장을 재신청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법원측이 문제의 보고서 자체를 공무상 비밀로 보지 않아 영장이 발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모호한 경찰행보=제주경찰청은 22일 이들 2명에 대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任경사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金씨는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任경사는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고,金씨는 공공기관의 정보문건(기록물)을 은닉.유출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경찰은 22일 아침 일찍까지는 "任경사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는 정해지지 않았고 金씨에 대해서만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金씨에 대한 적용 법률을 돌연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바꿔 任경사와 함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행보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미숙했다.

사건 초기부터 검찰의 지휘를 받으면서 이렇게까지 허둥댄 것을 보면 본의와 달리 '어떤 작용'이 있지 않았나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 이상한 법적용=김선우(金宣佑)변호사는 "경찰이 金씨에게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려 했던 것은 충분한 법률검토 부족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은 이들 두 사람에게 공무상 비밀누설죄를 적용했다.

金씨가 비밀누설을 교사했고 任경사가 문제의 문건을 건네준 공범관계로 본 것이다.

영장을 신청하면서 적용 법조문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과정에서 공공기록물 관리법으로는 구속영장조차 받아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지부사무실과 金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 집행에 대해 한나라당측은 "구금 중인 金씨를 입회인으로 대동해 빈 사무실을 수색한 것은 명백한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경찰은 "법적인 하자는 전혀 없었고 任경사가 3건의 문서를 추가로 전송했다는 진술이 있어 증거확보를 위해 수색을 벌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 김홍일 의원의 동향이 공무상 비밀인가=경찰은 "정보수집.작성 등의 직무에 종사해온 任경사가 취득한 정보는 명백한 공무상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주요 인사의 동향 등이 일반인에게는 비밀이 아닐 수 있지만 공직자,특히 정보를 다루는 공무원에게는 직무상 취득한 정보가 확실해 비밀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법원으로부터 공무상 비밀이 아닌 것으로 판정이 나 경찰은 물론 이를 지휘한 검찰 역시 판단미숙에 따른 무리수를 뒀다는 비난을 면키어렵게 됐다.

제주=양성철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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