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하늘을 날고픈 소년의 꿈 이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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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창공을 찢으며 수직강하하는 라팔(차세대 쌍발 다목적 전투기), 구름을 뚫고 급상승하는 F-15…. 음속을 넘나드는 최신예 전투기들의 비행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 이가 있다.

지난 21일 끝난 '서울에어쇼 2001'을 찾은 일본인 전투기 사진작가 도쿠나가 가쓰히코(德永克彦.44). 그는 보잉.다소 등 전투기 제조업체나 각국 공군의 의뢰로 전투기 사진을 찍는다. 1년에 2백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 그의 전투기 탑승 기록은 8백70여시간에 이른다.

"1996년 공군 곡예비행단 '블랙이글'을 찍으면서 한국과도 인연을 맺었죠."

블랙이글은 조종이 까다로운 A-37로도 하늘에 태극마크를 수놓는 등 아름다운 비행을 한다고 그는 칭찬했다.

도쿠나가가 전투기 사진작가라는 독특한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명쾌하다.

"어떤 소년이든 비행기를 동경하지 않나요□ 전 아직도 그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중반 최신예기 도입이 추진되면서 일본에 전투기 붐이 일어났다. 아르바이트로 전투기와 관련된 칼럼을 쓴 것을 계기로 그는 전공(유체역학)을 포기하고 소년시절의 꿈을 직업으로 택했다. 마침 경제 호황기의 미국에서는 전투기 사진 촬영 기회를 누구에게나 개방했고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투기 한 대가 한 시간 비행하는 데 연료비가 최소 3천만원입니다. 그러니 요즘은 초보에게 그런 기회가 없죠. 전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전투기 사진 촬영이 가능한 것은 약 1시간. 고속 비행하는 전투기를 짧은 시간 안에 찍으려면 비행고도.편대 형성 등을 조종사와 상의해 치밀한 사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도쿠나가와 함께 미국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이 광고 사진 등으로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어린 시절의 꿈'을 지킨 그는 정상에 우뚝섰다.

세계 최고의 전투기 사진작가인 그의 일당은 수천달러 수준이지만 의뢰업체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러시아 업체인 수호이가 록히드 마틴처럼 많은 보수를 줄 순 없죠. 하지만 러시아 조종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흥미진진해 적은 보수에도 기꺼이 응합니다."

영화 '사관과 신사'에서 생도들이 받는 훈련과 흡사한 비행적응 테스트를 각 공군에서 거의 매년 받아야 하지만 그는 힘든 줄 모른다고 했다."새로운 전투기, 새로운 조종사와의 작업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는 그는 또다시 새로운 전투기를 찍으러 이집트로 떠났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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