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호승 '겨울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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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물 속에 불을 피운다

강가에 나가 나뭇가지를 주워

물 속에 불을 피운다

물 속이 추운 물고기들이

몰려와 불을 쬔다

멀리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솔씨 하나가 날아와 불을 쬔다

길가에 돌부처가

혼자 웃는다

-정호승(1950~ ) '겨울날'

길가에 돌부처는 성난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쓸쓸한 세상을 돌부처는 온기로 감싼다. 그것도 옛말, 지금 길가에는 돌부처가 없다. 돈으로 바꾸려고 모두 파갔다. 산길을 안내하는 장승들도 사라졌다.

불을 쬐는 추운 물고기들은 용퇴 당한 직장을 잃은 사람으로 비유가 가능하다. 실업인구들은 겨울에 갈 곳이 없다.

아귀악척들만 살아 남는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쓴 것은 정호승씨였다.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도 썼다. 길가에 웃는 돌부처도, 뻣정다리 장승도 없는 세상은 적막하다.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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