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트] 안방 울린 '아름다운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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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왕건(최수종)은 한없이 초라했지만 신숭겸(김형일)의 뜨거운 의리는 빛을 발했다.

지난 7일에 이어 13일 방영된 '태조 왕건'에서는 고려군이 백제군에게 처절하게 패했던 공산전투가 재현됐다. 계곡으로 이뤄진 지형적 특성상 1만의 고려군은 백제군에게 완전 포위돼 독안에 든 쥐가 됐고, 왕건은 견훤에게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였다.

전투가 이 지경에 이르자 왕건을 살리고자 신숭겸이 묘안을 낸다. 자신이 왕건의 복장을 하고 전투에 나가 적을 유인하는 동안, 왕건은 백제군 졸병 복장으로 갈아입고 그 곳을 빠져나가라는 것.

이 대목에서 두 남자는 눈물을 흘렸다. "나더러 도망을 가라는 것인가. 놓아라, 나는 아니 간다, 아니 가!"라고 외친 왕건은 전장에서의 줄행낭이 낭패스러워 울었고 신숭겸은 "형님 폐하, 형님 폐하를 위해 목숨을 다 할 수 있게 되어 이런 기쁨과 영광이 없사옵니다"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리고 전장에 나가 화살을 온몸으로 막은 덕에 왕건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주연 왕건은 스타일을 왕창 구겼지만 신숭겸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이 대목에서 신숭겸의 남성미는 시청자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충성이 중시됐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신하가 왕의 복장으로 왕을 대신해 죽는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는 데다 신숭겸의 선택에는 의형제로서의 끈끈한 의리까지 가미돼 감동의 순도를 높였다.

이 덕택에 '태조 왕건'의 시청률은 43.6%(7일), 41.4%(13일)을 기록, 강력한 경쟁자 SBS '여인천하'를 제치고 그 주 최고치를 기록했다. 9월 이후 계속 30%대를 기록하던 시청률이 신숭겸의 최후를 그리며 급상승했다.

'태조 왕건'의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도 '신숭겸 너무 대단해''신숭겸, 그 아름다운 죽음' 등의 제목으로 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최근 '태조 왕건'이 40%대를 넘었던 때는 지난 8월 26일. 조물성 전투에서 백제의 금강태자가 혈투를 벌이다 자신의 눈에 꽃힌 화살을 뽑았던 장면이 나온 날이었다.

김종선 PD는 "김형일씨가 연기를 제대로 했다. 역할에도 맞았고 신숭겸의 남성적인 면모를 잘 표현했다"고 말했다. 한때 '굵고 느끼한' 목소리로 각종 쇼 프로에서 웃음을 선사했던 김형일씨.

최근에는 KBS 시트콤 '쌍둥이네'에서 쪼잔한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역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는 신숭겸 역을 계기로 연기의 폭을 한층 넓혔다는 평을 듣게 됐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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