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신석초 '수렵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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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것은 백마,이것은 오초마

이것은 용마

마상(馬上)의 사람은 모두 점잔도 하다

손엔 화살을 들고

어깨엔 살통을 메었으나

모두 감투를 쓰고

도포처럼 생긴 옷을 입었다

벼랑 밑으로 느슨히 말을 몰아

서로 돌아다 보며

무슨 대화를 하느뇨

평화롭고도 점잔한 사냥꾼들

그대들의 짐승은 어듸 있느뇨

우리는 모른다

그저 미지의 숲을 가는 일밖에.

-신석초(1909~1975) '수렵도'

생전에 회색 줄무늬 더블 재킷, 올백 머리, 제레미 아이언스 닮은 날 선 코, 지팡이 든 선생은 신사였다. 사냥은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감투 쓰고 도포 입은 우리 선대들도 즐긴 것 같다. 점잖고 무엄한 행렬은 요즘 상류들 골프로 바뀌었지만.

핸디가 몇이다? 남의 나라 얘기 같은데 마상의 풍류가 고단한 삶을 잠시 잊게 한다.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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