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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중국에 대한 환상을 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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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받아들인 중국에 섭섭하다는 말이 나온다. 서운함을 넘어 분개까지 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한국은 한 달 넘게 초상집 분위기다. 한데 아직 공식 발표만 안 됐다 뿐이지, 그런 비극을 만든 장본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게 중국이 할 일이냐는 지적이다.

한국의 분노엔 이유가 있다. 우선 그동안 꾸준히 격상돼 온 한·중 관계를 볼 때 배신감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많다. 양국은 수교(1992년) 이후 우호 협력관계(94년)→21세기 협력적 동반자 관계(98년)→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2003년)→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2008년)로 진화해 왔다. 더 이상 수식어를 붙이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게 다지고 다진 관계의 결과가 고작 이 정도냐는 것이다. 또 한국 최고지도자가 보여준 성의를 너무 가벼이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긴박한 한반도 정세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30일 1박2일 일정으로 상하이를 찾았다. 세계 부상을 선포하는 또 하나의 중국 선전장인 상하이 엑스포를 빛내주기 위함임은 천하가 다 안다. 그러나 중국은 이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 방중을 귀띔조차 해 주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한·중 정상회담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국에서 성토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최근 중국이 그토록 바라던 한·중 FTA를 직접 챙기는 성의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엔 측근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을 중국 대사로까지 보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더 기가 막힌다. 이에 따라 한국 내에선 급기야 ‘몸집이 커졌으면 머리도 커져야 되는 것 아니냐’는 중국 비난론이 나오고 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중국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깰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이 개입될 때 말이다. 2001년 9월 3일부터 5일까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방북 소감을 세 개의 한자로 표현했다. “친척 집에 갔다 왔다(走親戚).” 짧디 짧은 이 세 글자엔 북·중 관계의 애증(愛憎)이 명료하게 녹아 있다. ‘미울 때도 고울 때도 있지만 어쩌랴, 피붙이 친척인 것을…’ 하는 혈육의 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으로서도 자꾸 사고를 치는, 특히 위험한 핵장난을 하는 북한이 예쁠 리는 없다. 때론 야단도 치고 하지만 그래도 의절은 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60년 전 한국전쟁 때의 표현인 ‘혈맹(血盟)’은 아직도 유효한 개념이다. 그래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은 투 트랙이다. 한편으론 북한이 말썽을 피우면 경우에 따라 북한을 나무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국경을 맞댄 이웃 친척으로 그가 어렵다면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북핵 문제와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문제를 구분해 처리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도 북한이 안 했다고 우기는 한 중국은 남북한 모두에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동은 하지 말자며 얼버무릴 것이다. 거기까지다. 중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에 그 이상의 무엇을 바라는 건 오히려 우리의 지나친 기대에 가깝다. 이게 오는 8월 24일로 수교 18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의 현 주소다. 한·중의 신뢰 관계는 이 정도 수준인 것이다. 오랜 휴전 기간 탓에 북한의 위협을 잠시 망각하듯, 한·중 밀월에 중국이 우리와 체제부터 다르다는 걸 잊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중국에 크게 기대할 것도 또 실망할 것도 없는 것이다. ‘얼음 석 자 어는 게 하루 추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氷凍三尺非一日之寒)’라는 말이 있다. 만일 우리가 중국에 지금 이상의 것을 요구하려면 신뢰를 한층 강화하기 위한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장쩌민의 2001년 방북은 그리 원만한 건 아니었다. 양국 공동성명도 없었다. 그러나 장쩌민은 “세상은 많이 변했는데 변치 않는 건 중·북 우의뿐이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중국에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특히 북한 문제와 관련해선.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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