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5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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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흥덕대왕의 말은 정확한 것이었다. 장보고는 일부러 새를 쏘아 명중시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흥덕대왕의 말은 열자(列子)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다.

'어찌 하면 화살을 쏘지 않고 새를 떨어뜨릴 수 있겠습니까'하고 제자가 묻자 감승은 다음과 같은 행동으로 이를 직접 보여주었다고 열자는 기록하고 있다.

"감승은 화살이 없는 빈 활을 들고 하늘을 나는 새를 겨냥하였다. 감승은 새를 향하여 말하였다.'내려와라.' 그러자 새들이 날개짓을 멈추고 내려와 앉았다.

다시 감승이 빈 활을 들고 짐승을 향해 말하였다.'엎드려라.' 그러자 짐승들은 엎드려서 숨을 죽였다. 그리고 나서 감승은 말하였다.'화살을 쏘아 새를 맞추는 것을 궁술이라 하지 않고, 또한 여기에는 화살이 남는다.

그러나 화살을 쏘지 않고서도 새를 떨어뜨리는 것은 궁도라 하고 여기에는 화살조차 남아있지 않다. 또한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데 굳이 화살을 쏘아서 새를 죽일 필요가 어디에 있겠느냐. 만약 화살을 쏘지 않고서도 새를 내려오게 할 수 있다면 새를 죽인 것은 아니니 이는 활궁(活弓)이라 할 것이다. 훌륭한 활의 도인이라면 마땅히 활과 화살을 함께 잊어야 하는 것이다."

'쏘지 않은 화살(不射的神箭)'

전설적인 신궁, 감승의 '쏘지 않는 화살'이라는 용어는 바로 여기서 태어난 말.

흥덕대왕은 굳이 새를 쏘아 명중시켜 살생하지 않고서도 새를 떨어뜨린 장보고의 속마음을 순간 꿰뚫어 보았던 것이었다.

그날 오후.

흥덕대왕은 장보고가 진상한 물건들을 직접 친견하였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신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롭고 진귀한 물건들이었다. 장보고가 흥덕대왕에게 진상하였던 외래품의 목록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타슈켄트지방 아랄해 동안에서 나오는 에메랄드 보석, 캄보디아산 모직물인 비취모(翡翠毛), 보르네오 자바산 거북의 등껍질인 대모(玳瑁), 자바 수마트라산 유향목재인 자단(紫檀), 베트남 남쪽 나라에서 나오는 향료인 침향(沈香), 페르시아산 좌구용 모직물 등…."

한번도 본 적이 없던 진귀한 물건들을 본 흥덕대왕은 놀라면서 장보고에게 물어 말하였다.

"이 모든 물건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들인가."

그러자 장보고가 대답하였다.

"대왕마마, 이 물건들은 모두 당나라의 양주(楊州)에서 구한 물건들이나이다."

"그러하면 당나라에서 만든 물건들이란 말이냐."

양주는 당시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그리고 오랫동안 전조의 왕조였던 낙양(洛陽)에 이은 제3의 대도시로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의 본영이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양주는 페르시아 내지 아라비아 방면 혹은 베트남의 남쪽에 있던 참파(站婆) 등지의 상인들까지 와서 교류하고 있던 오늘날의 국제무역항의 중심기지와 같은 곳으로 소위 남해무역의 북쪽 한계점이었던 것이었다.

"아니나이다, 대왕마마."

장보고는 대답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당에서 만든 물건들이 아니나이다."

"그러하면 당 이외에 다른 나라들이 이 세상 위에 또 있단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대왕마마. 바다를 건너가면 당나라가 있사옵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나이다. 그곳에서 더 바다를 가면 참파라는 나라도 나오고, 거기에서는 이와 같은 향료가 나오고 있나이다. 그러나 더 바다를 나아가면 아랍이란 나라가 있나이다.

대왕마마, 하늘 아래 이 땅 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수많은 나라들이 이와 같은 진귀한 물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나이다. 지금도 당나라의 양주에 가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인들이 끊임없이 배를 타고 건너와서 이러한 물건들을 팔고 또한 당나라의 물건들을 사서 돌아가고 있나이다."

장보고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오직 당나라만이 하늘 아래 제일의 상국으로 믿고 있던 신라로서는 바다와 바다를 건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수많은 나라가 있어 이처럼 진귀한 물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 그것을 배로 싣고 와서 팔고 산다는 장보고의 말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환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장보고의 말은 그대로 사실이 아닌가. 눈앞에 보여지는 진귀한 물건들이야말로 장보고의 말을 입증하는 살아있는 증거품이 아닐 것인가.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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