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의 힘 … 신기술 개발했더니 169억이 손 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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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진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돈방석에 앉게 됐다. 169억원이다. 중소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고 이전료의 60%를 성과보수로 받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중소기업을 위한 핵심 기술 개발과 이전을 담당하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연) 에코공정연구부의 김세광(38·사진) 박사팀. 이 연구팀은 총 10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됐다.

생기연은 4일 김 박사팀이 개발한 에코 마그네슘과 에코 알루미늄 합금 소재 기술을 국내 중소기업인 HMK에 이전하는 대가로 총 282억원의 기술이전료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50억원은 선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15년간 나눠 받는다. 생기연이 문을 연 이래 가장 큰 기술이전 사례다. 전체 정부 출연연구소를 통틀어서도 세 번째로 많은 이전료를 받게 된다.

현행 기술이전사업화촉진법에 따르면 기술이전료 중 연구자 몫은 50% 이상이다. 대부분의 연구소는 내부 규정을 통해 하한선인 50%를 인센티브 한도로 두었다. 하지만 생기연은 이 비율을 60%로 정했다.

김 박사팀이 개발한 기술은 마그네슘과 알루미늄 합금을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마그네슘은 철에 비해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여섯 배나 된다. 그 때문에 무게를 줄여야 하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쓰이는 곳이 많다. 현재 시장규모만 180조원에 이르며 앞으로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마그네슘의 단점은 공기 중에서 폭발할 위험이 있고, 물에 닿으면 빨리 녹슨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합금 처리를 해야 한다. 문제는 종전에는 합금처리를 하려면 육불화황(SF6)과 이산화황(SO2) 같은 유해가스를 써야 했다는 점이다. 육불화황은 수퍼 온실가스라고 불릴 정도로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물질이다. 이산화황은 인체에 해롭고, 철로 만든 장비를 부식시키는 특징이 있다. 선진국에선 이 가스 사용을 제한하는 추세다.

이런 이유로 각국은 다른 합금법을 찾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 박사팀은 가장 먼저 새 합금법을 개발했다. 마그네슘 합금처리 과정에서 산화칼슘 등 칼슘계 화합물을 첨가해 얇은 보호막을 만드는 방법으로 산화와 폭발 위험을 없앤 것이다. 생기연 관계자는 “환경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도 기존 마그네슘 합금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이전(특허)료를 받은 기술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이다. 2004년부터 3년간 모두 33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두 번째는 표준과학연구원이 2008년 개발한 촉각센서기반 터치스크린 제작 기술로 국내 기업에 기술을 넘겨주고 총 325억원의 이전료를 받았다.

이전료는 역대 세 번째지만 생기연 연구진이 받는 금액은 역대 최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CDMA 기술의 경우 퀄컴사와 오랫동안 국제소송을 벌이며 수십억원의 소송 비용을 쓴 데다 당시에는 인센티브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ETRI 관계자는 “연구에 참여한 600여 명의 연구진에 모두 270억원 정도를 성과보수로 줬다”며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3억원 정도를 챙겼다”고 말했다. 촉각센서기반 터치스크린 기술을 개발한 연구진은 기술이전료의 50%인 162억5000만원을 인센티브로 받았다.

김 박사팀은 연구자 몫을 60%로 정한 생기연의 성과보수 한도 규정에 따라 최고액의 성과보수를 받는 팀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김 박사를 포함한 10명의 연구진에 인센티브를 배분하는 것은 책임연구자의 몫이라고 생기연은 밝혔다. 보통 연구 참여자가 5명이 넘으면 책임연구자가 성과보수의 60%를 받는 게 관행이라고 생기연은 설명했다. 게다가 이번에 이전된 기술은 전체 기술 공정의 5%에 불과하다. 앞으로 95%의 기술을 생산공정별로 나눠 이전할 계획이어서 인센티브 규모도 훨씬 커질 전망이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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