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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서면 스포츠외교 날개 단다 그렇다면 평창도?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목받고 있다. 본업인 항공업이 아니라 스포츠계에서 말이다. 대한탁구협회 회장직을 맡기도 한 조 회장은 평소 스포츠 지원을 통한 사회환원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까지 맡은 그가 ‘세 번째의 성공’을 위해 어떤 전략을 짜고 있는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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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4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창립총회에서 공동유치위원장에 선출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5위의 쾌거를 이룬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국민이 느낀 승리의 쾌감, 그 여운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통적으로 강한 종목인 스케이팅에서 선수들은 착실하게 메달을 획득해냈다. 특히 세계적인 인기를 한몸에 얻고 있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는 침착하고 우아한 경기로 금메달을 차지해 명실공히 빙상의 여왕이라는 입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탁구협회 갈등 풀어내고 올림픽메달 … 글로벌 인맥 총동원하며 과학적 유치작전
화제의 CEO |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 맡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요즘 행보

온 국민이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에 대한 응원 열기로 달아오른 그때, 밴쿠버 현지까지 날아가 다음 올림픽의 한국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한 사람이 있다. 바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다. 2월 13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이 열리던 날 조 회장은 밴쿠버에 개설된 ‘코리아하우스’ 개관식에 참석했다.

이곳에 초빙된 IOC 및 국제연맹 관계자를 만나 동계올림픽 개최지로서 평창의 장점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조 회장은 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환담하고 IOC 위원에게 직접 맥주를 서빙하기도 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항공사 CEO다운 매너와 정중한 대접에 세계적인 스포츠 관계자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덕분에 그와 직접 인사를 한번이라도 나눈 IOC 위원은 그를 “Friend”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을 정도다. 최근 조 회장의 ‘스포츠 리더십’ 행보가 돋보인다.

지난해 9월 14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창립총회’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가적 대업에 심부름꾼 역할을 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위원장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조 회장이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명절도 잊은 채 올림픽 유치 활동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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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 앤 스포츠’ 대사로 임명된 조양호 회장에게 ‘피스 앤 스포츠’ 후원인인 알버트2세 모나코 국왕이 기구의 상징인 ‘골든핀’을 꽂아주고 있다.
마치 그 소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후 조 회장의 발길이 바빠졌다. 추석과 설 연휴도 잊은 채 국내외를 넘나들며 유치 활동에 직접 나선 것이다. 지난해 추석 연휴기간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제121차 IOC총회와 제13차 올림픽콩그레스에 참석해 세계의 스포츠 기관 관계자들과 만났다.

2월 12일부터 3월 1일, 설 연휴가 낀 이 기간에 동계올림픽이 열린 밴쿠버 현지에서 전 세계의 기자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이 역시 평창 지역의 장점을 외국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행사 사이사이 국가대표선수의 경기를 관람하고 응원하며 동계 스포츠 부흥을 위해 기업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어떤 형태로 선수를 지원할지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전에서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 때문에 논란이 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일부 네티즌은 인터넷을 통해 격렬히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이 3월 10일 2018 동계올림픽 후보도시 신청 파일 서명식에 참석해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일부 네티즌의 격한 반응 때문에 심판이 경호원을 동반했고, 일부 IOC 위원으로부터 ‘과연 평창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판정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만, 심판 판정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평창의 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냉정하게 대처할 것을 간절히 당부 드립니다.”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식견과 혜안을 드러낸 대목이다. 중요한 스포츠 행사 때마다 한 번씩 불거지는 판정 논란에 대해 세계 스포츠 관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조 회장의 스포츠 리더십이 드러난 것은 이번 동계올림픽 유치가 처음은 아니다.

몇 해 전 대한탁구협회의 파벌싸움을 봉합하고 조직기능을 정상화한 것에도 그의 역할이 컸다. 조 회장은 대한탁구협회가 극심한 내부 균열과 파벌싸움으로 내홍을 겪던 2008년 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지만 내부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유남규·현정화 감독이 훈련지도를 포기했을 정도다.

인천아시안게임 유치의 숨은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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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대한항공은 ‘김연아 선수 후원 연장 협약식’을 가졌다. 조양호 회장(가운데 2인 중 오른쪽)이 직접 참석해 김연아 선수(가운데 2인 중 왼쪽)를 격려했다.
탁구 관계자로부터 직책을 부탁받은 조 회장은 평소 스포츠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데 관심이 많은 터였다. 그러나 조직을 한꺼번에 바꾸려 들지는 않았다. 베이징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섣불리 개편을 추진했다가 혼선이 빚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가장 먼저 서두른 것은 선수의 사기 진작이었다.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올림픽대표단과 선수단을 위해 성금 1억원을 쾌척했다.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는 현지를 직접 찾아 경기를 관전하며 열성적으로 응원하기도 했다.

협회에서 잡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남녀 탁구대표팀은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녀단체전 동메달을 거뒀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보다 먼저 체계적인 훈련시스템과 상시 훈련체제 구축 등 실력 향상에 힘을 쏟은 덕분이었다. 이후에도 조 회장은 스포츠 과학과 의학에 의거해 한국 탁구를 과학적으로 분석·발전시키는 여건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전횡과 파벌싸움으로 얼룩져 불신이 심한 집행부에 대폭 인사를 감행해 젊은 지도자들을 채워 넣고 내부 화합을 도모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반복돼온 것도 시스템 문제라 판단하고 이 역시 새롭게 정비해 나가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스포츠계의 리더로서 조 회장의 조직 운영과 통합능력을 보여준 예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조 회장은 항공업 CEO로서 세계적으로 구축해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치위원장으로서 적격이라는 평가도 이 탄탄한 해외 인맥들 덕분이다.

세계 유수 기업의 CEO 및 지도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은 물론 비즈니스 관계를 맺어온 조 회장은 현재 한·불 최고경영자클럽 회장, 한·사우디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해외 유수 항공사로 구성된 항공동맹체 ‘스카이팀’의 창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자신의 친분과 인맥을 통해 글로벌 기업 CEO들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자문의원으로 위촉해 든든한 우군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특히 2007년 벌어진 ‘2014 인천아시안게임’ 유치전에서 조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그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UAE 국가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조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아랍에미리트 항공사 회장이었다. 그 해 4월, 인천아시안게임 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홍승용 전 인하대 총장이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조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셰이크 아흐메드 아랍에미리트 국가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홍 전 총장이 만나 담판을 지은 자리에 조 회장의 입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는 결코 녹록지 않은 과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미 평창은 두 번이나 쓰디쓴 실패를 겪은 곳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성공하기 위해 조 회장은 더욱 세심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직접 챙기고 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도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가 각 종목의 열악한 환경을 눈으로 직접 보고 온 것도 그 이유에서다. 돌아온 직후 조 회장은 국내 동계올림픽 종목 지원과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 수립에 돌입했다. 세계대회 유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IOC 위원에게 달려 있다. 이들이 대한항공에 탑승할 경우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인상을 가지고 돌아가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응대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가진 모든 능력을 가능한 한 올림픽 유치 작전에 총동원하고 있는 상황. 조 회장의 뚝심과 결단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2월 17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조 회장은 ‘피스 앤 스포츠(Peace and Sport)’ 대사로 임명됐다. ‘피스 앤 스포츠’는 인종·종교·사회적 편견 등을 초월해 순수한 스포츠를 바탕으로 한 평화 증진 활동을 벌이는 국제기구다.

세계 스포츠계에서도 조 회장의 공로를 높이 평가한 셈이다. “조 회장은 스포츠가 세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며, 대한탁구협회장과 아시아탁구연합 부회장으로서 국제적인 탁구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회장인 조엘 브주의 말이다. 아시아인으로는 첫 번째로 대사로 임명돼 더욱 의미가 깊다.

두 번이나 실패로 돌아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지만 조 회장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활약상이 우리나라 올림픽 유치라는 좋은 결과로 이어져야 동계 스포츠 종목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조 회장의 강인한 스포츠 리더십이 올림픽 유치에 견인차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글 박미소 월간중앙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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