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서울 느와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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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60년대 홍콩 검술영화의 전성기를 알린 신호탄은 '방랑의 결투'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였다. 문혁(文革)이 중국 본토를 휩쓸 때 막상 자본주의 전시장 홍콩은 영화사 '쇼 브라더스'를 통해 하늘을 솟구치며 장풍을 날리는 강호무림의 영웅담을 펼쳤다. 할리우드의 코를 납작하게 했던 검술영화 열풍이 서울을 비껴갈 순 없었다.

60년대 후반 개봉한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는 대히트와 함께 충무로판 모작(模作)까지 양산해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지금의 30~40대가 열광했던 '정무문'과 '당산대형'도 빼놓을 수 없다.

70년대 초 전세계적 성공과 함께 이소룡이라는 슈퍼스타를 낳았던 바로 그 영화!. 여기까지가 '홍콩 누아르'의 전사(前史)다.이후 주윤발의 '영웅본색'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홍콩 누아르의 본바닥이다.

50년대 후반 프랑스의 범죄영화들을 '필름 누아르'라 했듯이, '검은' '어두운'을 뜻하는 프랑스어 누아르(noir)는 영국의 식민지 홍콩과 입술을 맞추며 희한한 세기말 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그 풍경은 잡종 그 자체였다.휘황한 총격전과 액션, 화려한 테크닉 속에 동양정서.서구 감수성의 비빔밥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검은 꽃'을 피워냈다. 했더니 한물 간 홍콩영화를 한국의 조폭영화들이 대물림하고 있단다. 최근 본지는 '친구' '신라의 달밤'에 이어 '조폭 마누라'의 흥행행진을 분석했다.

곧 개봉될 '달마야 놀자'와 함께 조폭영화 전성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94년 '게임의 법칙'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조폭영화의 깡패 이미지에 왜 대중들은 열광할까? 그것의 사회학적 코드는 무엇인가?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 40%라는 경이적 현상 속에 급부상한 조폭영화가 잘아진 남성세계의 대리만족일까? 또 밤의 권력이 낮의 권력과 짝짜꿍 노는 한국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어야 할까. 이런 설명들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게다.

그렇다면 조폭영화들에 '서울 누아르'라는 문패를 붙여볼 일이다. 어떠신지. 비로소 조폭영화의 시대적 징후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건 세기말의 홍콩과 2000년대의 서울은 너무도 닮은 꼴이라는 확인 때문이다.

무시 못할 사회적 역동성,그 안에 판치는 불법과 탈법, 여기서 오는 허무주의 심리…. 조폭영화가 액션과 멜로, 낭만적 반항과 코믹이 뒤엉킨 비빔밥이라면, 그 장르 영화의 새 토양으로 오늘의 서울이야말로 기막힌 공간이다. 아니 '더 이상 적격일 수 없다'.

조우석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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