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할아버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책을 읽듯 자연을 읽는 사람, 숲 속에 찍힌 발자국 하나만으로도 그 생명체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사람.

『할아버지』 (원제 Grandfather)는 세상의 평화와 진리를 찾아 평생 아메리카 대륙을 헤맨 한 아파치 인디언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인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추적술을 이용해 실종자들을 찾아내면서 유명해진 저자가 자신에게 원초적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 스승 '뒤를 밟는 늑대'의 경험과 철학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얼핏 우리 현실과 너무 먼 이야기 같지만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 자연 간의 관계에 대한 메시지와 이 나이든 인디언의 끝없는 배움과 가르침의 자세가 주는 울림은 현대적인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 아니 외려 모던 세계의 대안으로 읽힌다.

'뒤를 밟는 늑대'는 북미 인디언들이 '보호지'로 강제 이주되던 무렵인 1880년대에 태어났다.

가족과 친척 대부분이 죽임을 당한 후 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옛날의 생존방식을 익혔다. 열살 때부터 지혜로운 지도자를 뜻하는 '할아버지'로 불리기 시작한 그는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영혼의 목소리를 따라 끊임없이 여행을 떠난다.

그랜드캐년에서부터 아마존 정글.데스벨리, 그리고 북극에 이르기까지 그가 혼자 생사를 넘나드는 체험과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대자연의 묘사등이 인상적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동맹관계"이며, "갈증이나 극도의 추위조차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삶의 현실이자 스승"임을 깨닫게 한다.

또 어릴 때 백인들에게 끌려가 노예처럼 부려지던 인디언 소년, 같은 백인들에게도 천대받는 도시 부랑자들, 접근방식은 달라도 똑같이 자연을 어머니처럼 여기는 가톨릭 신부 등과의 만남에서도 같은 깨달음을 확인한다.

할아버지는 "무지와 탐욕 때문에 땅에서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좋건 나쁘건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마저도 사랑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전쟁과 미움은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고 오히려 미움을 증폭시킬 뿐"이라는 메시지다.

김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