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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주식투자 손실에 혈세 지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장기간 주식에 투자하다가 손해를 볼 경우 이를 세금으로 메워주는 상품이 머지않아 나올 전망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주식시장에 단기투자가 횡행하고 자금조달 기능을 제대로 못해 비상책을 써야 한다.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게 세금밖에 더 있나"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가 구상하는 이 상품은 이치에 맞지 않은 구석이 한두 곳이 아니다.

주식투자는 자기 책임아래 하는 것이다. 돈을 벌 수도,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자상하게도 정부가 세제를 이용해 주식에 투자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도덕적 해이는 증시의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주식을 사더라도 오래갖고 있으면 손해를 보지 않는데 누가 머리를 싸매며 기업가치나 성장성을 따지겠는가.

형평성이 깨지는 문제도 심각하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그래도 여유 돈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들이 큰 돈을 벌 목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세금 혜택을 준다는 것은 조세형평 원칙과는 어긋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상품이 시장에 주는 영향이다. 주가는 떨어질 만한 요인이 있을 때 바닥을 다져야 나중을 위해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정부가 무리한 상품으로 돈을 끌어모아 시장에 영향을 주면 오히려 회복이 늦어질 수도 있다.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에서 왜곡이 생길 수 있다.

A증권사 임원은 "단기적으론 돈을 끌어모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 장기투자 관행이 자리잡고 시장기능이 회복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코메디"라고 지적했다. B투신사 종목분석가는 "증시가 기능을 잃었다는 정부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증시에서 자금조달을 안하는 것은 시장 여건도 안좋지만 투자할 곳이 없고 은행대출 금리가 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품개발 배경을 두고 말도 나온다. C투신사 펀드매니저는 "정부도 무리한 상품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데 굳이 만드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각종 선거를 앞두고 주가 올리기를 꾀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경제부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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