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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LA 발언과 한미관계] 국제 위기감시기구 이사 3인 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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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가레츠 에번스 회장, 후나바시 요이치 대기자와 스티븐 솔라즈 의원(왼쪽부터)이 집권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변선구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3일 미국 국제문제협의회(WAC) 에서 "핵이 자위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일리 있다"는 취지로 연설, 미국과의 긴장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제위기감시기구(ICG) 가레츠 에번스(전 호주 외무장관)회장, 스티븐 솔라즈 전 미하원 아태소위 위원장,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국제문제 대기자와 17일 집권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ICG 이사회의 이사인 이들은 북핵문제 관련 현황 파악을 위해 최근 서울을 방문했다.

▶ 사회=노무현 대통령의 WAC 연설을 평가해달라.

▶ 에번스=노 대통령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 노력하는 것은 이해된다. 그러나 미국이 생산적으로 나오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은 당근뿐 아니라 채찍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표명했어야 한다. 북한이 합리적 제안을 거부하거나 합의를 무시한다면 어떤 일이 닥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에 다소라도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이 이처럼 '유화와 강경을 병행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시점 미국에 보내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전향적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노 대통령은 앞으로의 모든 연설에서 "북한에서 일어난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북한이 합리적인 협상을 거부한다면 한국은 응징의 대열에 설 수 있음을 천명해야 한다.

▶ 후나바시=북핵문제 해결과정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신념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즈음해 기회를 모색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가 지금 그런 연설을 한 것은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 이 연설은 노 대통령에겐 도박이다. 북한에 "나는 매우 진지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평양이 이를 무시한다면 점수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솔라즈='북한이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는 것'과 '북한이 하고 있는 행동을 용인하는 것'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만일 연설이 북한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북한을 용인하는 것으로 미국민이나 미국 의회와 행정부에 비쳐진다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 사회=부시 대통령의 집권 2기 대북정책이 강경기조를 띠게 될 것이란 예측이 무성하다.

▶ 솔라즈=예측하긴 아직 이르다. 강경파와 온건파가 맞서고 있다. 신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두 그룹 사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불분명하지만 강경이라고 규정하기엔 이르다. 사실 진짜 강경파는 부시 대통령 자신이다. 내 생각에 미국은 북한과 진지한 협상을 벌이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길이기 때문이다.

핵시설을 파괴하고 정권을 제거하는 군사적 응징은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점점 더 비현실적 대안이 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 경제 붕괴를 유도하는 노력에도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 에번스=강경정책을 계속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미 2년을 낭비했는데 4년을 더 낭비할 여유가 없다.

▶ 후나바시=미국엔 6자회담을 계속해야 할 강력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6자회담이 아직 뚜렷한 결실을 내진 못했지만 성공작으로 본다. 그래서 회담을 계속 할 것이다. 부시 2기 행정부가 군사적 대응은 대안이 아님을 곧 알게 될 것이다.

▶ 사회=미국의 새 대북 정책은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는가.

▶ 에번스=시간이 별로 없다. 우린 이미 북한의 핵무기 제조 능력을 목격하고 있다. 북한을 방치하면 고농도 우라늄(HEU)개발 계획도 급속히 추진될 것이고 수백개의 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방치할 일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빨리 움직여야 한다.

▶ 솔라즈=정책 변화는 6자회담 재개 시기와 관련돼 있다. 시기가 정해져야 행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려 할 것이다. 지금은 북핵문제를 다루는 대부분의 중요한 인사들이 제자리에 있다. 이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신속히 움직이고 싶어한다. 미국에 '전향적 입장'을 요구하고 있는 한국.일본.중국의 영향력도 주목된다.

▶ 사회=노 대통령 연설의 핵심은 미국이 좀더 유연해지란 것이지만 미국이 이를 수용할 것으로 보나.

▶ 에번스=미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고 북한이 받을 만한 제안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권 교체를 언급하지 말고 변화를 촉진시키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북한을 테이블로 유도해 낼 수 있다. 지난 6월 3차 6자회담에서는 방향을 암시하는 광범위한 그림만 그렸을 뿐이다. 세부사항은 없었다. 미국이 디테일을 제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 후나바시=워싱턴의 기본 관점은 공은 북한에 있다는 것이다. 아직 어느 쪽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테이블로 와서 모든 것을 얻어야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은 중유를 제공하려 하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해주려면 테이블에 나오는 것만으론 안 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 에번스=미국이 당근을 언급하기엔 이르다. 북한이 '핵 개발 프로그램' 동결을 밝혀야 하고 증거도 필요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가입에 대한 분명한 의사표명도 필요하다. 포괄적인 협정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런 일련의 조치가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 사회=북한은 부시 대통령 재선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북한의 생각은 무엇이라고 보나.

▶ 솔라즈=북한은 다른 선거 결과를 희망했겠지만 현실을 수용할 것이다. 내각이 확정되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보좌관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북핵문제를 잘 안다. 그러나 6자회담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견해도 부시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들 나라는 부시 대통령에게 "성공을 원한다면 보다 전향적 입장이 돼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평양이 전향적으로 나오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 사회=한.미 동맹관계가 불안하다고 한다.

▶ 솔라즈=아니다. 강력하다. 미국은 이라크 파병에도 감사하며 대한 방위공약도 흔들림이 없다. 미국은 북한 핵 문제 해결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 유지, 이 지역의 군사적 이해를 위해서도 한국과의 밀접한 관계가 필요하다. 반미감정은 워싱턴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미.프랑스, 미.스페인 관계와 비교하면 한.미 관계가 훨씬 깔끔하다.

사회.정리=정치부 안성규 차장

<참석자>
▶가레츠 에번스 국제 위기감시기구 회장
▶스티븐 솔라즈 전 미하원 아태소위 위원장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국제문제 대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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