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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나봐 이동욱을 좋아하는 건지 설공찬을 좋아하는 건지…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소설가 박수영이 섬세한 작가적 감수성을 담아 배우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은 3월 말 종영된 드라마 <추노>에서 노비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는 여주인공을 맡아 열연했던 이다해. 2004년 데뷔 이래 출연한 드라마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다해의 연기 인생을 되돌아보고, 그녀의 ‘현실’과 ‘허구’적인 삶 속에서의 사랑과 추억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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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후. 약속 장소에 도착해보니 사진기자 정이 낙심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카페 책임자가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이걸’에서 연기 몰입… 울음 안 그쳐져 친구에게 하소연 #작가 박수영의 스타 탐색 | <추노>에서 열연한 이다해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았던 것이 큰 불찰이었다. 이 인터뷰 기사는 <월간중앙>과의 첫 약속이다. 여배우 섭외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던 나는 오늘 인터뷰가 펑크 나면 두 번 다시 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이다해는 지금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 나는 카페를 나와 희멀건 햇살 아래 입술을 깨물며 서 있었다. 맞은편 카페로 뛰어가 보았으나 수리 중이었고, 이 지역 카페에 정통한 지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렇게 우왕좌왕할 바엔 차라리 그 ‘난공불락’의 책임자를 만나보는 게 낫겠다. 안 될 텐데, 하는 정 기자의 얼굴을 뒤로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책임자는 날 5분이나 기다리게 한 뒤에 나타났다. 비밀스럽고 까다로운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내 애원에도 꿈적하지 않았다. 거절의 제스처는 칼처럼 차고 세련되기까지 했다. 이 눈빛을 가만 보고 있자니 그가 나를 이리저리 골리다가 막판에 슬그머니 놔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경험 미숙으로 사전에 당신 카페를 예약하지 않은 것을 사과했다. 오늘 인터뷰를 하지 못하면 영영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말하는 도중 그는 카페 안을 유유히 걸어 다녔다. 나는 내 인내심을 즐기고 있었다. 이 난공불락의 원칙이란 예약제도, 손님에 대한 에티켓도, 그 뭣도 아닌 순전히 그의 기분이라는 것을 감지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해빙’이 시작됐을 때는 이미 약속시각이 훌쩍 넘어 있었다. 그의 입에서 속 시원히 ‘예스’라는 말은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밖에 있는 정 기자를 불러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 어수선한 순간에 이다해가 나타났다. 차분히 앉아 그녀의 등장을 음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서로 마주 보았다. 그녀는 로맨틱하게 웨이브 진 짙은 갈색 머리 위에 초콜릿 케이크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다해는 모자를 벗어 사뿐히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다해는 3월 말 시청률 35%를 웃돌며 종영된 <추노>에서 노비 신분인 언년이 역을 맡았다.

시청자들은 한국 최하층 남성들의 거친 미학에 열광한 나머지 드라마 내내 고운 자태를 뽐낸 이다해에게 ‘민폐언년’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미워했다. 언년이가 노비 신분임에도 ‘죽창’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소극적인 캐릭터임은 분명했으나 이 비난에는 복잡한 질시가 섞여 있었다.

극본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이 뒤따르고, 같이 출연한 남자 배우들은 이다해가 ‘어리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감쌌다. 이 옹호로 남성성이 짙은 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존재감이 갑자기 달라질 수는 없었다. 이다해 자신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드라마라는 소감을 남긴 채 <추노>는 막을 내렸다.

1984년생인 이다해는 2001년 미스 춘향 진으로 선발돼 연예계에 데뷔했다. <왕꽃선녀님>(2004~2005)에서 신기를 받는 인상적인 연기로 주목을 얻었고, <그린 로즈> (2005)에서는 살인 누명을 쓴 애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마이 걸>(2005~2006)은 이다해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 드라마에서 이다해는 앙증맞은 사기꾼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이 코믹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헬로 애기씨>(2007)에서 종갓집을 지키는 여주인공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유복자를 키우며 건달기가 있는 남자의 인생을 바로잡아주는 <불한당>(2008)에서도 이 캐릭터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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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추노>에서 열연한 이다해.

이다해는 자신의 연기 폭이 로맨틱 코미디로 한정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 후 차기작으로 선택한 <에덴의 동쪽>(2008~2009)에서 이다해는 전혀 다른 캐릭터에 도전한다. <에덴의 동쪽>에서 이다해는 명문 법대를 졸업한 수재로, 이동욱(연정훈 분)을 사랑하는 운동권 여학생이자 언론 재벌의 서녀인 민혜린 역을 맡았다.

사랑과 야망, 지성을 모두 갖춘 이 새로운 캐릭터에 이다해는 무척 끌렸다. 그녀는 <모래시계>의 고현정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며 연기 연습을 위해 10년도 더 지난 그 드라마를 틈틈이 시청했다. 그러나 총 56부작 중 40회를 끝으로 이다해는 드라마에서 자진 하차했다. 어디에서도 중도 하차의 이유를 속 시원히 밝히지 않은 채 이다해가 후속작으로 택한 것이 바로 <추노>다.

따지고 보면 <추노>는 배우로서 드문 일인 ‘중도 하차’ 이후에 불명예를 만회하기 위해 신중하게 선택한 작품일 수도 있다. 질펀한 남성 캐릭터들이 우글거리는 <추노>에서 이다해가 배우로서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아직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 2004년 연기자로 데뷔한 이후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여주인공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녀가 그동안 자신의 연기 인생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궁금하다.

허구와 실재 사이, 모호한 사랑

실제로 본 이다해는 앳되고 귀여웠다. 크고 검은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그 안에는 세상을 지나치게 밝게도, 어둡게도 보지 않으려는 현실성이 언뜻 비쳤다. 그녀는 또박또박 말하고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어딘지 모르게 성숙미가 느껴졌다. 이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궁금했다.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그런 것 같아요. 열아홉 살 때 데뷔했으니까 벌써 7년이 됐네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대학 생활도 해본 적이 없죠. 어린 나이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중 앞에 서야 했기에 성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저는 또 한없이 아기 같아져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죠. 절 모르는 사람들은 <마이 걸>에서 제가 연기를 잘했다고 하지만 제 친구들은 알아요. <마이 걸>에서 전 연기한 게 없다고요. 천방지축이고 덜렁대고… 그게 바로 저 자신이라는 거죠.”

─사실 저는 <마이 걸>을 보면서 다해 씨가 실제로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포착했어요. 물 만난 고기처럼 연기가 자연스럽더군요. <마이 걸>에서 특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어요. 설공찬(이동욱 분)을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해서 혼자 외국으로 떠나는 장면 있죠. 공항에서 우는 장면, 기억나요?

“네, 기억나죠.”

─다해 씨가 슬피 우는데 몸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군요. ‘꺽꺽’ 하고 말이에요. 다른 드라마에서도 다해 씨는 참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그런 소리를 내는 건 드물었죠. 제 기억에 <그린 로즈>에서 고수 씨의 주검이 화장되는 장면, 그리고 바로 이 공항 신에서 그랬어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슴 아픈 이별이라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마이 걸>은 제가 무척 몰입했던 작품이에요. 유린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좋았고 애착이 많았어요. 그래서 연기를 하면서 무척 혼란스러웠어요. 분간이 잘 안 되는 거예요.”

─분간이 안 된다니요?

“제 감정이오. 극 중에서 유린이 설공찬과 사랑에 빠지잖아요. 나는 이다해고 극에서는 주유린인데, 설공찬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이다해가 이동욱을 좋아하는 건지 유린이 설공찬을 좋아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는 거예요. <그린 로즈> 할 때는 저에게 순간 몰입력이 있다고 감독님이 좋아하셨어요.

큐 하면 울고, 컷 하면 웃고. 웃다가 울어야 하면 또 울고. 그런데 <마이 걸>에서는 리허설할 때부터 마음이 아픈 거예요. 차 시동이 부릉부릉 하고 걸리듯이 말이죠. 설공찬을 떠나 보내야 하는 공항 신이 너무 가슴 아프더군요. 그러다가 울음이 터져나오는데….

그렇게 인천공항에서 촬영을 끝내고 다른 신을 찍으러 탄현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울음이 멈추질 않는 거예요.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하소연했어요. ‘내가 미쳤나 봐. 내가 이동욱을 좋아하는 건지, 설공찬을 좋아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저도 헷갈리는데요.

“내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제 정체성이 의심스러웠어요. 하지만 전 알아요. 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너무 몰입해서 그랬던 거예요. 어린 마음에 혼란스럽고 헷갈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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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촬영하고 나서 동욱 씨를 보니까 어떻던가요?

“근데 동욱 오빠도 그랬어요. 설공찬이 유린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가 반대하는 신이 있어요. 그 신에서 설공찬도 울어요. 그런데 동욱 오빠도 그 신을 찍고 나더니 계속 우는 거예요. 어휴, 진짜 씨, 하면서 너 때문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흥미로운 표정을 거두지 않자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대본도 너무 좋았고. 서로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63빌딩에서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감독님이랑 스태프들이랑 다 같이 술 한잔 했는데 저와 동욱 오빠는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여의도 한복판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어요. 촬영하는 내내 그렇게 설공찬과 주유린은 좋아했던 거예요.”

─그렇다면 두 사람은 그 허구적 사랑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사석에서 만났는데 그가 아니더라고요.” 그녀는 까르르 웃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어서 빠져 나와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냥 설공찬이 아닌 거예요.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실제로 대화해보니까 동욱은 동욱이고 설공찬은 설공찬이더라고요. 오빠도 그랬어요. 야, 나도 네가 이런 줄 몰랐다면서. 서로 자신들이 사랑했던 인물이 아니란 걸 깨달은 거죠. 그렇게 우린 꿈에서 깨어났어요. (그녀는 잠시 생긋 웃었다) 그래서 친구가 됐어요. 지금도 우린 아주 친하게 지내요. 연기 한 장면 한 장면이 추억이 되는 것 같아요. 연기는 허구지만 그것이 쌓여서 실제 내 인생 추억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다해 씨는 어떤 딸이에요?

“엄마와 친구같이 지내요.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엄마는 지금까지 제 남자친구들을 모두 알고 있어요. 집에서 데이트를 할 때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남자친구 사귀기 전에 엄마한테 미리 보여주기도 하는 걸요.”

─엄마가 남자친구를 보고 점수를 매기나요?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게 엄마가 싫다고 하면 나도 싫어져요. 그렇다고 마마 걸은 아니에요. 엄마 말에 영향을 많이 받는 모양이에요.”
친한 여배우는 누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린 로즈>할 때 만난 서형 언니랑 친해요. <낭랑 18세>나 <왕꽃선녀님> 할 때는 신인이라 사람들을 잘 사귀지 못했어요. 그 후에는 다 친하게 지내요. 특히 남자들이랑 더 친해요.”

“저 자신에게 너무 냉정해요”

─남자들과 성격이 더 잘 맞나봐요?

“남자들과 있는 게 더 편해요. 그분들이 절 여자로 보지 않는다면.”

“여자로 보더라도 숨기겠죠” 하고 말하니까 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다. “남자친구 없이 지낸 지 오래 됐어요” 하고 덧붙인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자친구가 있었던 게 언제였어요?” 하고 물었다. 이다해는 잠시 생각하다가 “심각하게 만났던 것은 꽤 오래 됐어요. <마이 걸> 이전일 거예요. 그 이후에는 스쳐가는 남자들은 있었지만” 하고 대답했다.

─스쳐간다는 건?

“사귀었다가 금방 헤어지거나, 데이트는 하되 결혼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이요. 나이 먹을수록 남자친구 사귀기가 힘들어요. 요즘은 아예 ‘건수’가 없어요.”

─본인의 모습 중에서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자신 없이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요. 한없이 저 자신이 작아질 때가 있거든요.”

─모든 인간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좀 심한 편이에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욕심이 너무 커요. 남들에게 항상 기분 좋은 존재이길 바라는 걸요.”

─배우로서 장·단점이 있다면?

“제 자신을 너무 객관적으로 본다는 거예요. 너무 냉정해요. 제 연기를 보면서 실망할 때가 많아요. 저렇게밖에 못하나? 쓸데없이 비판하고 스스로 사기를 떨어뜨려요. 심지어 악플러에게 동화되기도 하는 걸요. 자신이 있는 것 같다가도, 아냐 내 능력 밖이야 하면서 저 자신을 달달 볶아요. 제가 몰랐던 성격이에요.”

─다해 씨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나요?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먹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하던데 전 다 소용없어요. 시간이 흘러 그 일이 지나가야 풀려요.”

─<에덴의 동쪽>을 할 때 조민기 씨가 다해 씨에 대해 칭찬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주는 것 없이 싫었는데 함께 일해보니까 교만하지 않고 뭘 훈련해야 하는지 아는 배우라고 하더군요.

“(웃으며) 저도 왜 싫었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냥 싫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친한 선배님 중 한 분이에요. 선배님이 담배를 꺼내면 ‘밖에 나가서 담배 펴’ 하고 말할 정도로 친해요.”

─세대 차가 있을 텐데요.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말이 통하고 교감이 되면 저는 친해져요. 조민기 선배님은 상당히 쿨하고 세련된 분이세요. 생각도 모던하고 구닥다리가 전혀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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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목마르다고 해야 하나요”

─<왕꽃선녀님>에서 다해 씨는 어떻게 보면 기괴한 연기를 했어요. 신기를 받은 젊은 여성이 어린아이부터 노파에 이르기까지 연기를 했어요. 또 장군신이 들어오면 목소리와 표정이 남성처럼 변했죠. 이런 연기하는 데 거부감은 없었어요?

“거부감은 아니고 그저 신기했어요. 작가가 어떻게 이런 설정을 했을까. 그때는 신인이어서 어떤 연기를 주어도 감사했을 거예요. 주어진 조건에서 설득력 있게 그리고 진지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무당이니 점이니 이런 것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부담스러운 것도 있고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었어요.”

─다해 씨는 이 연기로 ‘신인연기자상’을 받았죠?

“그랬죠. 저로서는 감사한 작품이었어요.”

─<에덴의 동쪽>에서 다해 씨는 처음으로 강하고 당찬 연기 변신을 시도했어요. 하지만 중도에 문제가 있었나요?

“그랬죠. <에덴의 동쪽>을 생각하면 속상한 점이 많아요.”

─사실 애초부터 연정훈과 사랑의 밀도도 강하지 않았어요. 민혜린이라는 캐릭터를 강하게 추동시키는 중심 갈등도 부족했고요.

“그랬죠. 저도 제 캐릭터에 공감하지 못했어요. 중간에 작가가 바뀌면서 민혜린이라는 캐릭터는 이리저리 흔들렸어요. 연정훈만 사랑하든지…. 그러다가 언니 남자를 뺏어서 약혼하고, 약혼반지 뺀 날 다시 송승헌이 좋아서 쫓아다니고, 또 뭐가 잘 안 될 거 같으니까 다시 대통령 아들을 붙이고.

그 후로 제 역할은 정말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그녀는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말투도 점점 격앙되고 있었다)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하겠어요. 물론 연기는 허구지만 저는 최대한 진심을 담아서 연기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것조차 안 되는 거예요. 카메라 앞에 있는 게 창피하고, 도망치고 싶고. 이 대사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내가 이 자리에서 이 사람과 왜 이런 신을 찍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는 거예요.”

나는 <에덴의 동쪽>에서 민혜린의 캐릭터가 부재한 이유가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에게 있다기보다 그 인물을 창조한 작가에게 있다고 느꼈다. 이다해의 실책이라면, 민혜린에게서 <모래시계>의 고현정과 같은 역할을 기대한 나이브한 직감력이 아닐까. <에덴의 동쪽>의 민혜린은 사랑과 야망을 쟁취하는 드라마틱한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도 연기자로서 ‘중도 하차’라는 오명을 갖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도저히 연기를 계속 할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은 왜 중도 하차했어요, 하고 누가 물으면 그냥 이야기가 길어요라고만 했을 뿐 이런 이야기는 처음 해요.”

─<추노>에서 이다해 씨는 언년이라는 노비 역할을 했어요. 드라마 초반부 신분을 숨기기 위해 남장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언년이가 앞으로 좀 더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하겠구나 기대했어요. 그런데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별로 변하지 않더군요. 다해 씨는 언년이라는 캐릭터에서 무엇을 기대했나요?

“언년이는 원래 강렬한 색깔이 없는 캐릭터예요. 사실 저도 그게 답답했어요. 그런데 그게 원래 조선의 현실이잖아요. 남자에 파묻혀서 기를 못 펴는 여성상 말이죠.”

─제가 작가라면 비록 현실성이 떨어지더라도 언년에게 좀 더 반항적이고 억척스럽고 희생적인 캐릭터를 가미했을 것 같아요. 남성 작가가 극중 여성 캐릭터에 공을 들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그녀가 내 말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을 때 “다해 씨는 <추노>를 결정하기 전에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 하고 물었다.

“알고 있었어요,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도 강렬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다만 혁이 오빠, 천지호, 설화, 지호 오빠 캐릭터가 강하다 보니 그 와중에 제 캐릭터가 강한 걸 희석해주는 거라는 걸 알았어요. 작가는 남성은 강한 남성미로, 여성은 전형적인 여성미로 그려지길 원한 거예요. 단지 요즘 정서상 언년이가 너무 수동적이었던 게 흠이었죠.”

─<추노>를 찍기 전에 다해 씨는 사극에 도전하고 싶어했어요. 사극만의 말투와 눈빛이 매력적이고 장희빈과 같은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죠. 그렇다면 언년이 캐릭터가 다해 씨 연기에 어떤 발전적인 요소가 있었을까 의심스러운데요.

“이런 경험 없이 장희빈과 같은 대작을 했더라면 힘들었을 거예요. 오히려 <추노>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어요. 다른 사극에서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계획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번에 다 보여주지 못한 걸 앞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연기를 1, 2년 할 것도 아닌데요, 뭐.”

“오히려 제가 더 조급했나 봐요” 하고 말하면서 나는 웃었다.

─<추노>를 선택하기 전에 <에덴의 동쪽>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만회하고 싶기도 했을 텐데, 아쉽게도 <추노>에서는 다해 씨가 갖고 있는 가시적인 연기의 가능성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결국 <에덴의 동쪽> 이후 다해 씨가 하고 싶은 연기가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네요.

“그래서 오히려 좋은 것 같아요. 아직도 목마르다고 해야 하나요. 부글부글 하고 준비되어 있는 상태예요. 하나만 걸려 봐라, 하나만 걸려 봐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올해 안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꼭 강한 거, 독한 거라기보다 제가 그동안 해보지 못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아요.”

스베프 플랫폼에서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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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동안 홀 쪽의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있던 김태훈(이다해 소속사 팀장)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김씨는 나의 대학 시절 어떤 동료와 무척 닮았는데 누군지 금방 떠오르지 않아 나는 계속 그 ‘연상’을 미루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이다해는 김씨를 올려다보더니 “화보 몇 시까지 가는 거죠?” 하고 물었다. “5시.” “여기 가까운 데죠?” “논현동.”

“그럼 10분이면 가겠네요.” 하고 내가 끼어들자 주변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 웃음은 인터뷰 연장에 대한 우리의 암묵적인 동의였다. 이다해는 오늘 저녁 <인스타일>의 화보 촬영이 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하얀 티셔츠에 하트 문양을 그렸고, 그 티셔츠를 판매한 수익금으로 시각장애인을 돕는단다.

이다해의 ‘자선’에 대해서는 내가 강의하는 K대학교의 S교수로부터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기부하기가 쉽지 않아” 하고 S교수는 말했다. 나는 이다해와 잠시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자선을 칭송하기보다 ‘사실’을 묻고 대답하는 식이었다.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 터라 나는 <에덴의 동쪽>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조금 더 묻고 싶었다.

─<에덴의 동쪽>이 1980년대 이야기잖아요. 1980년대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기억이 거의 없어요. 저는 1984년생이니까. 그저 어렴풋하게 있을 뿐이에요.”

─드라마를 하면서 1980년대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저는 한국의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호주로 가서 거기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쳤으니까 한국 역사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죠. 드라마를 하면서 1980년대에 대해 흥미가 생기긴 했지만 사실 우울했어요. 칙칙한 인상이랄까.”

─호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나중에 아기를 낳아도 보낼 것 같아요. 유학에 대한 동경이라기보다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잖아요. 마음도 넓어지고, 시야도 넓어지고. 제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요. 삶의 능률도 오르죠. 언어라는 것은 저에게 흥미로운 분야예요.”

─학창 시절 중 즐거웠던 에피소드는 없나요?

“저는 ‘버우드’라는 여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에서 예쁘다는 애들이 모여서 그룹을 만들었어요. 열다섯 명 정도가 모였는데 저도 그 중 하나였어요. 베트남·홍콩·호주 애도 있었고, 혼혈아들도 있었어요.”

나는 웃으며 “그야말로 다국적 ‘걸그룹’이네요” 하고 말했다.

“우린 이름도 지었어요. 시스터스 유나이티드, ‘에스유(SU)’라고요.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다 같이 학교에 나가요. 학교 앞에는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항상 남자 애들이 모여서 우리 걸그룹을 기다렸어요. 그 중에 사귀는 커플도 있었고. 우리는 영화도 보러 가고 당구도 치고 스티커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해 씨는 남자친구가 없었어요?

“있었죠.” 망설임 없이 그녀가 말했다. “마이클도 사귀고” 하면서 큭큭 웃는다. “토니도 사귀고.”

하하하. 우리는 큰 소리로 같이 웃었다.

“그런데 그때 남자친구들은 애인이라기보다 진짜 친구였어요. 불장난같이 순수한 것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귀여워요. 그러다가 짝사랑을 하게 되었어요. 첫사랑을요. 글쎄 제가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마이클? 토니?” 하고 물었더니 “아니오” 하고 그녀는 잘라 말한다. “다니엘이었나” 하면서 까르르 웃는다. 제3의 인물의 등장에 본인도 쑥스러운가 보다.

“네, 다니엘이었어요. 아, 이런 게 좋아하는 거구나 처음 알았어요. 좋아하니까 자꾸 만나고 싶은 거예요. 그때 우리는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저는 학교에서 집까지 직행노선이 있었는데, 학교를 마치면 그걸 타지 않고 일부러 다른 노선을 탔어요. 그리고 중간에 ‘스베프’ 라는 곳에 내렸어요. 그 오빠가 항상 그 시간에 그곳에 왔거든요.

그 오빠는 한국 교포였는데 우린 집안끼리 친해서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쑥스러워서 서로 말을 붙이진 못했죠. 그렇게 우리는 플랫폼에서 만나 같은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곤 했어요. 열차 안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오빠가 먼저 내리면, 안녕 하고 인사만 했어요. 그렇게 2년 동안 짝사랑을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오빠도 절 좋아해서 일부러 그 플랫폼에 왔던 거예요. 저랑 같은 열차를 타려고.”

“세상에! 2년 동안 짝사랑만 하다니요.” 나는 탄식했다.

“바보죠? 그 사람이 제 첫 남자친구였어요” 하고 말하더니 그녀는 싱긋 웃었다. 행복한 모양이다.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다니엘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하고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녀는 귀엽게 고개를 저었다.

─보고 싶어요?

“네, 보고 싶어요.”

“다시는 <황진이> 같은 배역을 놓치지 않을 거예요”

“다른 배역을 탐낸 적 있어요?” 하고 물었다. “<황진이>요”라는 대답이 의외로 빨리 돌아왔다.

“<마이 걸>제작사에서 한 건데 저한테 시놉시스가 먼저 왔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제 나이가 어리고 귀여운 캐릭터가 더 맞다는 생각 등으로 판단을 잘못 내렸어요. 이제는 그런 배역이 들어오면 놓치지 않을 거예요. 지원 언니가 연기는 잘했지만 한국무용은 제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언젠가 팜므 파탈 같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 역할에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면 뭘까요?

“눈빛이오” 하면서 그녀는 살짝 눈웃음을 쳤다. “눈빛으로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를 떠올리면 여성스럽고 착하고 새침하다고 하는데 사실 전 한 번도 유혹하는 연기를 안 해봤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보는 사람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나는 보이스 리코더를 끄고 고개를 들어 홀 쪽을 보았다. ‘차가운 눈빛’은 카운터에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웃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았다. 늦은 오후의 태양이 빌딩 끝에 걸려 있었다.

박수영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스웨덴 웁살라대학 역사학과에서 현대유럽역사를 공부했다. 1997년 <실천문학> 겨울호에 중편소설 <바람의 예감>으로 등단했다.

마력적인 아름다움을 내뿜는 소설이라는 평을 받은 첫 장편소설 <매혹>(2001)과 후속작 <도취>(2003)를 출간했다.

만 3년간 스웨덴에 체류하면서 써 내려간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2009)은 북유럽 사회에 대한 생생하고 격조 높은 탐구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영화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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