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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광주 무용가 엄영자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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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제자들이 큰 무대를 마련해줘 부끄럽습니다. 전 스승들께 더 큰 사랑과 가르침을 받고도 해드린 게 없는데…. "

한국 무용계에서 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엄영자(嚴英子.61)한국발레협회 광주전남지부장이 생일인 6일 오후 5시30분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큰 무대를 선사받는다.

공연은 제자들이 비발디의 사계에 '선생님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젖줄' 이라는 뜻을 담아 안무한 발레.현대무용과 1백50여명이 은사에게 꽃을 바치는 퍼포먼스 등으로 꾸며진다. 이어 제자들은 한춤 '태평무' 를 곁들인 축하 리셉션을 열어 嚴씨의 무용 인생을 담은 1백40여쪽짜리 화보집을 헌정한다.

嚴씨에게 춤을 배운 중견 무용인 20여명은 10여년 전부터 스승의 날이면 그를 찾아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꽃을 피워왔다.

올해는 "우리의 뿌리가 선생님에 있음을 잊지 말자" 며 '엄 댄스 루츠(Um Dance Roots)' 를 발족했다. 그리고 지난해 그냥 넘긴 환갑을 기념해 헌정 무대를 올리기로 결정, 5천여만원을 모아 공연을 준비했다.

嚴씨는 광주여고.전남여고 등에서 무용 교사로, 전남대.경희대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76년부터는 학원을 차려 무용 꿈나무들을 키우고 있다.

광주여고 제자인 김화숙(金和淑.52)원광대 무용과 교수는 "선생님은 고교 3년 동안 쉰 날이 하루도 없을 만큼 지독하게 연습시키셨다" 며 "열정과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라고 말했다. 회초리를 드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오전 3~4시까지 연습토록 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광주여고는 이화여대 무용콩쿠르에서 6년 내리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또 嚴씨는 학생들과 함께 먹고 잤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박봉을 털어 등록금을 대줬다고 제자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해 한국 발레 대상을 타기도 한 그는 지금까지 2천여명의 무용인을 길러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전국 각지에서 무용과 교수.교사와 안무가, 직업 무용수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신정희 경성대 교수.김선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김경주 우석대 교수.박준희 조선대 교수.안은미 대구시립무용단장.김애정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 등이 바로 그들.

嚴씨는 "중년에 억울하게 핍박받을 때도 제자들은 나를 믿고 따라 재기하는 데 버팀목이 돼주었다" 며 "깊고 두터운 사제지간의 정을 또 한번 확인해 기쁘다" 고 말했다.

김정숙(金貞淑.51)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선생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이제 우리가 나이먹고 제자들을 키우다 보니 알게 됐고 그 보답의 하나로 헌정 무대를 마련했다" 고 말했다.

광주=이해석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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