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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태양극단 '제방의 북소리' 국내공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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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무리 선진 외국 극단의 공연이라고 해도 '놓치면 아까운 공연' 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12~17일 국립극장 야외특설무대에서 공연하는 프랑스 태양극단의 연극 '제방의 북소리' (본지 9월 11일자 47면)는 정말로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공연이다.

이유는 여럿이다. 연출자가 세계 최고의 찬사와 존경을 받고 있는 아리안 므누슈킨(62)이라는 점이 그렇고, 동양의 전통을 해체해 서양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포스트모던 예술의 걸작이란 점도 그렇다.

또한 연극과 음악.인형극.움직임(무용) 등이 균질하게 섞인 총체극의 전형이며, 이를 구현하는 방식이 연출가에서부터 단원들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귀천(貴賤)없이 만난 '집단창조' 라는 점에서도 공부할 게 많은 작품이다.

기자는 지난 9월 중순 일본 도쿄(東京)의 신국립극장에서 이 작품을 미리 보았다. 그 때의 감흥을 섞어 '제방의 북소리' 를 소개한다. 외형상 일본색(日本色)이 좀 튄다 해서 쇼비니즘적인 시각에서 보면 자칫 오해의 소지도 없지 않은데, 이런 예단도 바꿀 필요가 있다.

▶내용〓화려하고 현란한 스타일에 가려 내용을 곁가지쯤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연극의 배경은 1천년 전 동아시아지만 구체적 연도는 중요치 않다. 1천년은 긴 세월이고, 굳이 그 긴 세월로 설정한 것은 동양 연극의 원형질로 회귀하고픈 연출자와 작가(엘렌 식수)의 염원일 뿐이다.

이 시기 도성(都城)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농민 등 비천한 자가 살고, 남쪽에는 상인 등 부유한 권력자들이 산다. 가진 자들의 남벌(濫伐)로 산은 황폐해지고 도성은 급기야 홍수의 위협에 직면한다. 이곳의 통치자 강(Khang)왕은 선택의 기로에 몰린다. 도성을 보호하기 위해 북쪽 제방을 허물 것인가, 남쪽 제방을 허물 것인가.

이 결정의 순간과 몰락 과정에서 드러나는 적대적 모순관계와 선악의 대결,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 등이 이 연극의 주제다. 피날레에 수천t의 물을 무대에 끌어들여 경이를 연출하는데, 제방의 붕괴 장면은 이 장엄한 휴머니즘 드라마의 주제의식이 집약된 압권이다.

▶형식=묵직한 주제의식을 포장한 외피는 동양 각국의 전통예술이다. 물론 일견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일본의 전통 인형극 분라쿠(文樂)다.

3백여년 전 오사카(大阪)에서 발흥한 분라쿠는 자유의지 없이 살아가야 하는 민중의 애환을 인형을 앞세워 풍자했다. 이런 점에서 '제방의 북소리' 는 형식과 내용이 절묘한 합일을 이뤘다. '인형 분장을 한 배우' 가 검은 두건과 천을 뒤집어 쓴 두세명의 인형조종자(분라쿠에서는 이를 '구로코' 라고 한다)의 조종에 의해 연기를 한다.

그러나 이런 분라쿠 형식의 재구성만이 '제방의 북소리' 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의 사물(북.꽹과리.징.장구)을 비롯해 세계의 1백여가지 악기가 조응(음악감독은 장 자크 르메트르)하고 한복 등 동양 각국의 의상과 색감이 무대 전체에 시종 출렁인다.

특히 전막 마지막에서 인형들이 치는 사물놀이의 신명과 피날레 구원의 사자(使者)로 등장하는 갓 쓰고 한복 입은 조선시대 선비(인형극장장 바이쥐)의 모습은 어떤 형식의 우위도 능가하는 전율이다. 한마디로 연극은 세계성(世界性) 그 자체다. 02-2274-3507. (http://www.ntok.go.kr).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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