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캠핑 … 아빠는 ‘맥가이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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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한석(40)씨 가족이 지난 24일 경기 포천 유식물원에서 캠핑을 즐기고 있다.

두 아이의 아빠인 박희천(38)씨는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북한산에서 밥해 먹고 잠자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지퍼 달린 텐트는 언감생심, “모기장 치고 이불 덮고” 그렇게 야생에 입문했다. 그래도 남부러울 것 없었다. 솥단지 걸어 밥 해 먹고 계곡에서 가재 잡아 천렵을 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현재 30대 후반 이상의 남자라면 이런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가장 친해질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1989년, 국립공원에서 취사·야영이 금지됐다. 이후로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 간의 추억이 가득 묻은 텐트·코펠은 이사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애물이 됐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다시 캠핑이 인기다. 주 5일 근무가 정착된 지 한참이 지났고, 레저의 스타일이 다양해진 덕분이다. 호텔·리조트·펜션에서 먹고 마시는 데 이력이 난 사람들은 숲과 황토·물이 흐르는 천연 휴양지를 원하게 됐다. 비단 ‘1박2일’의 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씨는 “아버지한테서 배운 캠핑의 매력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놀토마다 장비를 챙긴다 말한다. 유년 시절 이후, 잊힌 캠핑의 기억이 아이 아빠가 돼서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현재 캠핑을 주도하는 세대는 30~40대 젊은 아빠들이다. 젊은 아빠들이 아웃도어로 되돌아왔다.

더치오븐과 숯불을 이용한 로스트치킨 요리.

박씨는 지난 24일, ‘스노피크 유저들의 모임’ 다섯 가족과 함께 경기도 포천 유식물원 캠핑장을 찾았다. 6동의 텐트가 오밀조밀 모여 앉았고, 가운데에 식당 텐트 그리고 화로 2개를 잇대어 숲 속 작은 마을을 꾸몄다. 엄마·아빠·아이 모두 합해 22명에 이르는 대가족이다. 여러 가족이 함께 하는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다. 또래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숲은 아이들에게 자연학교 자체다. 김상구(39)씨의 딸 윤서(4)는 “오늘 언니들과 함께 올챙이도 잡고 도롱뇽 알도 봤다”고 자랑을 해댔다. 카페지기 손한석(40)씨는 “토요일 오후, TV 소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아빠 노릇을 조금은 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말에 캠핑 안 데려 간다”는 말은 그의 아들 경빈(12)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이다. 모임에서 캠핑 경력이 가장 오래된 김학열(37)씨 또한 딸아이 도연(9)을 바라볼 때마다 흐뭇한 표정이다. 내성적인 아이가 캠핑 때문에 완전히 변했다. 김씨는 “전에는 밖에 나가면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사는 아이”였단다. 하지만 이날은 어린 동생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언니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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