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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원리주의 이론의 함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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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의 최대 희생자는 납치된 여객기에 타고 있었거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있다가 불의의 참변을 당한 사람들이다.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전체 미국인들도 직접 희생자들 못지 않은 피해자다.

그러나 많은 아랍 사람들도 고통을 당하고 있다. 테러공격의 주모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이 아랍인이면서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아랍인들은 서양에서 증오와 의심의 대상이 됐다.

특히 아랍계 미국인들이 당하는 정신적인 피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둘러 아랍문화센터를 방문해 아랍인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미국의 적은 아니라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런 사태를 낳은 것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 탓이다.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과 언론들은 무슬림들의 과격한 정치적인 활동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신비적인 이름을 붙였다.

*** 퇴보 ·반동 이미지 씌워져

1970년대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주의에 대한 이슬람의 저항, 이슬람권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체제비판, 선진국들의 첨단기술과 글로벌 미디어가 초래한다고 생각되는 도덕적 타락에 대한 반발 같은 복잡한 현상이 이슬람 원리주의의 이름 아래 단순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 원리주의에는 퇴보와 반동의 이미지가 씌워진다. 이란 혁명의 성공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서양의 경계심리를 더욱 자극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원리주의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 기독교의 보수적인 경향과 그것을 대변하는 사회운동과 관련해서다. 기독교 원리주의가 이슬람 원리주의보다 먼저 등장한 것이다(일본의 중동.이슬람학자 야마우치 마사유키).

기독교 원리주의는 성서는 절대적으로 옳다는 무류성(無謬性)과 교의(敎義)의 순수성을 믿는 입장이다. 그것은 코란과 예언자 모하메드의 말씀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 이슬람과 닮은 꼴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무도 스스로를 원리주의자로 자처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슬람주의라고 해도 필요하면 같은 무슬림까지 희생시키는 극단적인 행동파와 사회복지.약자보호에 활동의 중점을 두는 온건한 일상적 운동파는 비전과 신조가 다르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79년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이용해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코란과 자금과 무기를 밀반입시킨 것도 미국 스스로도 이슬람 세계가 가진 여러개의 얼굴을 안다는 증거다.

이슬람 세계는 다양하게 분열돼 있다. 같은 과격파라도 빈 라덴과 하마스의 투쟁방식은 같지 않다.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의 조직은 수단.방법 안가리고 테러를 자행하는 무타타리프(과격파)로 분류된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이슬람국가들이 지원할 차비를 갖추는 것은 79년을 회고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한 같은 이슬람 국가들의 적대감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슬람 테러리즘이 이슬람 원리주의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모두가 테러를 투쟁수단으로 하지는 않는다. 프랑스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베일을 두르기를 고집하고 음악과 체육수업을 거부하는 아랍계 여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지만 테러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 테러리즘과는 다른 개념

미국과 미국을 지원하는 나라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와 이슬람 테러리즘을 구별하지 않으면 테러에 대한 보복응징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테러조직의 근절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일률적으로 반문명적인 악으로 배격하면 그것은 자칫 자기실현적 예언이 돼 코란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의미에서의 원리주의자들까지 빈 라덴의 추종자로 만들지도 모른다.

국제테러의 근절은 절체절명이다. 야마우치 마사유키가 지적한 대로 프랑스 혁명 때 자코뱅의 독재 뒤에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왔다.

마찬가지로 사상 초유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공격을 이슬람 테러리즘의 '종말의 시작' 이 되게 하려면 이슬람 원리주의와 이슬람 테러리즘을 구별하는 안목과 이슬람 일반에 대한 관용의 태도를 가지고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를 이슬람 세계에서 고립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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