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하이 한·중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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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992년 8월 한·중 수교는 동아시아에서 냉전체제가 해소됨을 의미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에서 ‘하나의 적과 하나의 벗’ 관계를 ‘두 개의 벗’ 관계로 정책 대전환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기술·자본·경험을 활용했다. 한국도 중국의 방대한 시장과 노동력을 활용해 경제위기 탈출에 도움을 받았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첫 번째, 한국은 중국의 세 번째 교역 상대국이 되었다. 중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중 한국인이 첫 번째로 많고, 한·중 간 주 837회 항공편은 중·일 간보다 많다. 상하이 엑스포를 참관할 7000만 명 중 500만 명이 외국인이고 그 가운데 한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자국의 지속적 발전에 방해가 될 불안정 요인을 환영할 리가 없다.

불안정 요인은 바로 북한이고 김정일이다. 지난 3월 말 국내외 언론은 김정일의 방중(訪中) 예상 기사를 보도했었다.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인 3월 말부터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시작되는 4월 9일 사이에 김정일이 방중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청와대 대변인실까지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확인하였다. 그 예상은 빗나갔다.

김정일 방중이 무산된 이유는 바로 천안함 피격사건에 있다고 봐야 한다. 3월 26일 천안함이 피격되는 양태를 보고 자연스럽게 중국은 북한의 관련성을 상정했을 것이다. 북한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일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지도부를 만나면 중국 지도부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상하이 엑스포 개막이라는 국가 대사를 앞둔 시점에서는 더욱 편치 않은 상황일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방중 연기를 요청했을 개연성이 높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천안함 사태 이후 양국 지도자가 처음 만나는 것이어서 매우 중요하다. 천안함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리고 중국은 물론 6자회담 당사국이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해 커다란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물증’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현재까지의 정황 증거만을 가지고도 한국은 중국에 북한 관련성을 상기시킬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 사태의 엄중함을 직시해야 하며 앞으로 중국의 대북정책도 바뀌어야 함을 강조할 수 있다. 천안함 사태는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중국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이 통일의 주체로서 1차적 책임을 질 것이며 한반도의 통일은 대륙과 한반도의 끊겼던 고리를 복원시켜 동북아 전체를 역동적인 지역으로 만들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의 비용보다 훨씬 클 이익을 중국도 함께 나누게 될 것임을 중국이 알아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시간상 충분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논의의 출발점 정도는 될 수 있다.

이제 중국은 북한이라는 안보상 완충지대가 없어져 미국의 포위망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때가 되었다. 이란·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미국이 한반도에 병력을 강화하기는 어렵다. 2005년 이후 미국과 중국은 고위급 전략·경제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오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미국의 한반도 플랜에 대해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시각을 가질 때가 되었다.

2008년 8월 후진타오 주석의 방한(訪韓) 시 한·중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합의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면 21세기 동북아의 공동번영과 평화안정을 위한 한반도 통일에 관해서도 논의해야 하고, 당연히 천안함 사건을 다루어야 한다. 베이징 올림픽 다음 날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 주석에게 재중(在中) 탈북자를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지 않도록 요청했다. 이런 과감한 접근이 상하이 정상회담에서도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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