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프간 공격, 아직은 때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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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과 뉴욕의 테러 대참사 발생 9일째인 어제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연설은 현 시점에서 미 국민과 국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메시지를 적절히 반영했다고 본다. 부시 대통령은 우선 적의 개념을 명확히 했다.

과격 테러조직과 이를 지원하는 정부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무한 정의 작전' 이 평화를 사랑하고 테러를 배격하는 대다수 이슬람 신도와 아랍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특히 구체적 시한을 못박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유력한 용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위시한 테러 조직원의 일괄 인도와 테러 관련시설 폐쇄를 요구한 것은 무고한 아프간 주민을 배려해 한번 더 기회를 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아프간 종교지도자들의 자진 출국 요청을 무시하고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지 않을 경우 아프간은 미국의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이미 내전과 기근으로 신음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전쟁의 참화에 무방비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빈 라덴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의 '성전(聖戰)' 을 불사하는 것과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과연 알라신의 뜻에 맞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탈레반 정권의 몫이다. 공은 탈레반 정권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부시 대통령이 공격명령을 내릴 여건이 아직은 성숙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부시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테러와의 전쟁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문명국가가 연대해서 수행해야 할 장기전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국적군을 구성해 전쟁에 나서는 것이 효과적이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를 통해 필요한 외교적 수순을 밟는 한편 테러의 배후를 명백하게 밝히는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고 판단되는 시점까지도 탈레반 정권이 요구 수용을 거부할 경우 비로소 공격명령의 버튼을 눌러도 늦지 않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여론을 하나로 묶는 통합자로서 부시 대통령의 역할을 세계는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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