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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히말라야 14좌 완등] 사선 넘나들며 밟은 정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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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해 가을. 안나푸르나를 실패한 오은선 대장은 베이스캠프로 내려와 제단 앞에서 울었다. 울며 말했다.

“무사하게 돌려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 봄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 오 대장은 자신의 텐트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자신을 위협했던 크레바스처럼 끝 모를 실망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약속을 지켰다. 다시 안나푸르나로 돌아왔고, 기필코 정상에 섰다.

안나푸르나가 오 대장을 쉽게 받아준 건 아니다. 지난해처럼, 아니 지난해보다 더 지독한 통과의례를 요구했다. 오 대장이 정상 등정에 나선 22일 오후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우박이 쏟아졌다. 베이스캠프에 입성한 이래 처음 겪는 악천후였다. 베이스캠프가 이럴 지경이면 5600m 캠프2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새벽에 기상이 나아지자 오 대장은 오전 5시40분 등반을 속개했다. 캠프2에서 캠프3까지가 가장 어렵고 위험한 구간이다. 이 루트는 상습적 눈사태 지역이다. 이틀 전에도 이곳에서 후아니토 팀 두 명이 눈사태로 부상을 입고 후퇴했다.

다급하게 무전기가 울린 건 오전 7시였다. “눈사태다!” 캠프1에서 망원렌즈에 잡힌 눈사태는 초대형이었다. 앞선 셰르파 3명을 스치듯 쏟아진 눈 폭풍은 오 대장 쪽에 이르러서는 거대한 눈꽃으로 피어났다. 베이스캠프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나 오 대장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후 1시40분 캠프3 도착. 그러나 그곳은 눈사태 영향으로 캠프를 칠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짐만 내려놓은 채 아래로 내려와 밤을 지내기로 했다.

다시 우박이 내렸다.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고 쉴 새 없이 천둥과 번개가 안나푸르나 상공을 흔들었다. 쏟아지는 우박은 베이스캠프의 텐트를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전 대원에 비상이 걸렸다. 번개가 칠 적마다 안나푸르나는 악마의 이빨처럼 번득였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캠프1로 철수합니다.”

날이 좋아지기를 기다려 두 번째 공격에 나선 오 대장은 24일 캠프1을 출발해 25일 캠프2에 도착했다. 하루를 쉰 뒤 26일 오전 4시20분 출발, 눈사태 상습 위험지대를 벗어나 오전 9시 캠프3에 도착했다. 이어 캠프4로 출발했고, 27일 오전 1시45분 7200m 캠프4를 출발해 오후 3시(현지 시간) 정상에 선 것이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끝내 오은선을 받아들였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신영철 (월간 ‘사람과 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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