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7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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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79. 큰스님의 '깨달음'

불교 서적들을 보면 부처님이나 유명한 고승들이 깨달음, 즉 오도(悟道)한 인연들이 많이 나온다.

예컨대 부처님은 보리수 나무 아래서 6년 동안 고행하다 새벽 샛별을 보고 마침내 도를 이루었다고 해 '견명성(見明星.밝은 별을 봄) 오도' 라 한다. 우리나라의 고승 서산대사 또한 마을을 지나다 닭 우는 소리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온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자신의 오도 인연에 대해 한번도 말한 적이 없다. 지금 같으면 용기를 내어 물었을 텐데, 성철 스님을 모시던 당시엔 무섭고 어려워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성철 스님이 남긴 법어(法語)중 깨달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 대신 소개한다.

"나는 법상(法床.설법하는 자리)에서 '마음을 깨쳐 성불, 부처를 이루어야 한다' 고 말해왔습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마음을 깨친다' 는 것은 꿈을 깨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꿈을 꾸고 있을 때는 모든 활동이 자유자재한 것 같고 아무 거리낌없는 것 같지만 그것이 꿈인 줄 모릅니다.

그러다가 꿈을 턱 깨고 나면 '아하!

내가 참으로 그동안 꿈 속에서 헤맸구나' 하고 알 수 있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중생들은 세상을 살면서 꿈 속에서 사는 줄을 모릅니다. 꿈 속에서 깨어난 사람이 아니면 꿈을 꾸는 것인 줄 모르는 것과 같이 '마음을 깨친다' 하는 것도 실지로 마음의 눈을 떠서 깨치기 전에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

성철 스님은 삶을 꿈에, 깨달음을 '꿈에서 깨어남' 에 흔히 비유하곤 했다. 동서양 철학을 다양하게 공부한 성철 스님은 흔히 동양의 공자나 장자를 인용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성철 스님은 '크게 깨친 뒤에야 큰 꿈을 알 수 있다(大覺然後知大夢)' (장자)는 말을 인용하곤 했다. 이어지는 법어.

"성불하기 전에는 꿈을 바로 깬 사람이 아니고, 동시에 자유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중생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꿈 속에서의 자유이고, 깨친 사람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꿈을 깬 뒤의 자유입니다.

그러니 꿈 속에서의 자유와 꿈을 깬 뒤의 자유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을 깨친다' 는 것은 무심(無心)을 증득(證得)하는 것입니다.

무심을 증득하면 거기에서 대지혜(大智慧) 광명이 생기고 대(大)자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꿈을 깬 사람, 마음의 눈을 뜬 사람이 되어 대자유의 자재로운 활동을 하게 됩니다. "

성철 스님이 말하는 '꿈에서 깨어남' 은 곧 성불(成佛), 깨달음이다. 이같은 깨달음의 강조는 부처나 조사(祖師.종파를 연 큰 스님)를 부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이렇게 되면 부처도 필요없고 조사도 필요없게 됩니다. 부처다, 조사다 하는 것은 다 중생의 꿈을 깨우기 위한 약(藥)입니다.

그러니 꿈을 완전히 깨어서 견성성불(見性成佛.본성을 바로 보아 깨달음을 얻음)하여 참다운 해탈을 성취하면 부처도 필요없고 조사도 필요없는 참다운 대자유자재가 됩니다. "

성철 스님은 자유와 평등이란 서구적 개념 역시 불교로 끌어들였다.

"서양사람들은 '인간은 자유이며 평등'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참다운 자유와 평등은 마음을 확철히 깨쳐야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대자유와 평등을 성취하려면 '내 마음이 본래 부처(卽心是佛)' 라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 이외에 불법이 없고, 자기 마음 이외에 부처가 따로 없다는 것을 철두철미 믿고, 오직 화두를 배워서 열심히 정진해 올바르게 깨치면 대자유자재한 부사의 해탈경계(不思議 解脫境界.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

성철 스님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믿는 경계를 '칠십이 되어서야 욕망하는 마음을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從心所欲不踰矩)' 는 공자의 말에 비유하곤 했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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