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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음악인 유럽 무대 진출 '숨은 손' 권순덕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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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예술도 결국은 마케팅이다. 아무리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어도 대중에 알려지지 못하면 결국은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지난 몇년새 한국 음악인들의 유럽무대 진출이 늘고 있다. 지휘자 장윤성, 바이올리니스트 조영미.피호영.양고운, 첼리스트 이유홍, 소프라노 박미혜, 피아니스트 김미경…. 1998년부터 오스트리아.체코.헝가리 등 유럽무대에 진출한 한국 음악가들이다.

그 다리 역할을 해온 사람이 쇤부른 뮤직 컨설팅의 권순덕(37)대표다.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고 있지만 1년 중 5개월은 서울 양재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한국 연주자들을 만난다.

유럽에 있는 동안은 교향악단.페스티벌.공연장을 움직이는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한국 연주자들에게 무대를 마련해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호텔관광학을 공부하기 위해 빈으로 유학갔다가 피아니스트와 결혼하면서 음악 매니지먼트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아내도 무척 반대했지만 이젠 도와주는 편이죠. "

오스트리아에 8년째 살고 있는 그는 발트피어텔 지방정부 관광청 소속 공무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의 명함철에는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등 '한번만 마음먹으면 누구라도 무대에 세울 수 있는 재량을 가진 사람들' 의 연락처가 빼곡하다.

처음 인연을 맺는 것이 어렵지 그 후엔 연주 실력만 갖추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권씨가 성사시킨 '프로젝트' 중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울산시향 상임지휘자 장윤성의 펜데레츠키 교향곡 제5번 '코리아' 유럽 순회공연. '코리아' 는 92년 문화부와 KBS가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에게 공동 위촉, 국내 초연한 곡으로 유럽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장씨는 98년부터 헝가리(부다페스트 콘체르트 오케스트라).체코.오스트리아(야나체크 필하모닉)에서 이 곡을 초연했고 내년엔 북독일방송교향악단과 독일 초연을 추진 중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화수(32)씨는 내년 4월 24일 프라하 스메타나홀에서 열리는 프라하 방송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함께 브람스의 '2중 협주곡' 을 연주할 계획이다.

또 장윤성씨의 '코리아' 초연 때 협연자로 출연했던 피아니스트 김미경(40)씨는 빈 콘체르트 페어라인과 모차르트 협주곡 3개를 녹음, 다음달 초 영국 님버스 레이블로 음반을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 5일 김씨가 뉴서울필하모닉과 로베르트 푹스의 '피아노협주곡' 을 국내 초연한 것도 빈 악우협회 도서관에서 어렵사리 구한 악보를 권씨의 소개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는 11월 뮌헨심포니와 이 곡을 녹음, 코흐 레이블로 내놓을 예정이다. 또 내년 3월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열리는 국제현대음악협회(ISCM) 75주년 기념 음악제에 출연한다.

올해 프라하 신년음악회에 출연한 소프라노 박미혜, 지난해부터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의 하이든 페스티벌에 3년째 연속 출연하고 있는 첼리스트 이유홍, 내년 4월 빈심포니 체임버와 협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 등도 권씨의 끈질긴 설득으로 얻어낸 '작품' 들이다.

권씨의 꿈은 한국에서 세계적인 음악제를 여는 것. 그는 문화 페스티벌이야말로 '굴뚝없는 공장' 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처음엔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보이지만 관광수입을 계산하면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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