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쟁은 마지막 선택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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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워싱턴과 뉴욕에 대한 테러공격을 '21세기의 첫 전쟁' 으로 선포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승리할 것" 이라고 다짐했다.

국내와 해외주둔 미군이 전원 비상대기에 들어갔고, 예비군 동원령까지 검토되고 있다.

전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부시 대통령의 공격명령만 남은 상태다. 세계가 숨을 죽이고 불안한 눈으로 미국을 주시하고 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손상된 자존심과 국민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생각할 때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테러의 배후가 아직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무고한 인명이 희생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미국의 결의 앞에 힘을 잃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이번 테러에 대해 응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테러 응징을 명분으로 한 이번 전쟁이 세계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면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하다.

첫째, 반미(反美)테러의 배후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의 연결고리가 입증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이번 테러와의 직접적 연관성이 확인되기 전이라도 그가 저지른 과거의 반미 테러소행만으로도 응징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는 모양이지만 이는 마녀를 사냥해 분풀이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둘째, 빈 라덴이 배후로 밝혀지면 증거를 제시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범인 인도를 요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프간 정부의 협조 여부와 태도에 따라 공격 범위와 수위를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걸프전의 경우에서 보듯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민간인이 인간방패로 내몰릴 수도 있다.

테러에 대한 응징이 죄없는 민간인의 희생을 초래한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테러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아프간을 공격하더라도 테러 관련 시설과 군사시설에 국한함으로써 민간인의 희생을 최소화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범을 지원하고 보호하거나 피난처를 제공한 나라에 대해서도 보복을 다짐했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는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케이다가 전세계 34개국에 세포조직을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대부분 몰래 숨어들어 은밀히 활동하는 조직일텐데 이 나라들을 다 보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의 분노와 응징 결의에는 공감하지만 응징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

범죄조직을 색출해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데 그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다.

누누이 강조했듯 미국의 개전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범죄의 배후가 우선 명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국제 여론의 지지를 업어야 한다. 이런 절차를 생략한 채 당장 아프간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들어갈 경우 미국에 동정적인 세계 여론은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슬람권과의 확전은 문명의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마저 있다.

테러 근절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연대와 공조가 필수적이다. 미국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된다. 전쟁에 대한 국제 여론이 엇갈릴 경우 테러 근절의 길은 더 멀어질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의 단추를 누르기 전에 한번 더 숙고하는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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