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테러대전] 2~3시간씩 기다려 헌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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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건국 이래 최악의 테러 피해를 본 충격 속에서도 미국 시민들은 당국과 한 덩어리가 돼 피해 복구에 나서는 단결된 모습을 보였다.

일부 시민들이 한때 거리에서 '피의 응징' 을 외치는 등 흥분하기도 했으나 적십자사 등에는 테러 부상자들을 위한 헌혈 행렬이 장사진을 이뤘으며 TV와 라디오 방송국에는 헌혈 또는 헌금 접수와 복구작업 자원신청을 문의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했다.

○…뉴욕 시당국은 12일 경찰병력을 동원해 맨해튼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를 차단하고 폐허가 된 테러현장 수습에 나섰다.

뉴욕 시민들은 "사태수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가능하면 직장에 나오지 말고 집에 머물러 달라" 는 시당국의 당부에 적극 협조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평소 범죄가 많은 뉴욕이지만 경찰과 소방관의 대부분이 사건현장에 투입된 가운데서도 약탈이나 방화 등의 소요사태는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테러 발생 직후 구조대원들이 사건현장으로 급파돼 밤새 인명구조작업을 벌여 뉴욕과 뉴저지 일대의 병원이 부상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자 헌혈 행렬이 줄을 잇기도 했다.

사고 현장에서 대륙 반대편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도 수백명이 헌혈을 위해 줄을 섰으며, 워싱턴 DC의 워싱턴병원에도 대학생들이 2~3시간씩 기다려 헌혈을 했다.

전국적으로 자원봉사를 지원한 의사.간호사.약사 등 의료진만 7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뉴욕시청 인근 광장에는 긴급 의료센터가 설치됐으며 근처 직장인과 뉴욕대학생 등 3백여명이 즉각 자원봉사에 나서 의료진과 함께 땀을 흘렸다.

○…엄청난 연기를 뿜으며 폭삭 주저앉은 초대형 건물, 피흘리는 희생자, 거리에 나뒹구는 휴지 조각, 정신없이 대피하는 군중 등 할리우드 액션 대작에서나 봄직한 장면들을 TV로 지켜보며 국민들은 분을 삭이지 못해 '응징' 과 '보복' 을 외치기도 했으나 곧 정상을 되찾고 피해 복구에 나섰다.

워싱턴DC와 인근 메릴랜드 및 버지니아주가 비상사태를 선언했으나 시민들은 테러 직후의 경악에서 침착을 회복하며 차량통제와 상가 조기철시 등 당국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며 선진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소방관과 경찰관 등은 죽음을 무릅쓰고 구조에 나서 많은 인명피해를 보았다.

피터 간시 뉴욕시 소방국장을 비롯해 지금까지 3백여명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최정예로 꼽혀온 제1, 2, 4구조대의 팀원 전원이 행방불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의 부녀자들은 구조작업에 지친 소방관.경찰.자원봉사자 들에게 간단한 스낵과 음료수를 나눠주며 힘을 보탰다.

○…일부 한인(韓人)과 교포 2세들도 의료봉사에 나서는 등 사고 수습을 도왔다.

뉴욕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인 교포2세 수전 오(26)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나오다 테러사고 소식을 듣고 동료 의료진과 구급 의약품을 챙겨 긴급의료센터로 달려왔다" 고 말했다.

○…테러발생 직후 폐쇄된 국회의사당을 떠나 안전장소로 소개됐던 여야 의회지도자들도 단결된 모습을 보였다. 상원의원인 톰 대슐 민주당 총무와 하원 민주당 총무 리처드 게파트 의원을 비롯한 민주.공화의원 1백여명은 국회의사당 계단에 모여 위기 극복을 위한 미 의회의 의지를 과시했다. 이들은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 를 합창하고 국가 위기에 대한 초당적 대처를 강조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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