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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중앙신인문학상 응모작 경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시.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잘 알고 그것에 맞는 형식과 기교.문장은 세련되게 구사하고 있으나 정작 '왜 나는 이 작품을 쓰는가' 를 모르고 있다.

왜 사는지도 모르며, 물을 여유도 없이 현대적 삶을 세련되게 살아내고 있듯이. " 제2회 중앙신인문학상 응모작에 대한 예심위원들의 전반적인 평이다.

예심은 소설 부문 구효서.박상우.공지영(이상 소설가).장영우.우찬제(이상 문학평론가)씨, 시 강형철.이상희(이상 시인).하응백(문학평론가)씨, 평론은 장영우.하응백씨가 맡았다.

8월31일 응모를 마감, 8일 예심을 마치고 현재 본심이 진행 중인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에는 모두 1천3백7편이 들어왔다.

또 5편 이상씩 받은 시부문에는 1천6백여명이 응모했고, 평론은 63편이 접수됐다. 지난해보다 약간 줄기는 했지만 이같은 응모편수는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 응모량에 비해 3배가 넘는 것이다. 이같은 압도적 응모량은 기존의 신춘문예를 확대개편하면서 응모 시기를 연말에서 8월로 잡은 중앙신인문학상이 최고 권위의 신인등용문으로 자리잡혔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단편소설 소재로는 남북회담.환경문제.원조교제.유전자 조작.동성애 등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와 화제들이 많이 등장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여성 응모자들의 30대 주부 탈선과 노년층 이야기였다. 그리고 외환위기 초기의 1999년 응모작 같이 중산층 가정의 경제적 위기에 기인한 갈등을 다룬 작품이 다시 늘었다.

존재론적 고뇌, 실존적 방황 등 진지한 주제를 다루려는 작품이 늘어나 반가웠으나 대부분 소설적으로 형상화돼 있지 않아 안타까웠다.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려는 작품도 주인공이나 화자를 1인칭으로 설정해 '우리' 의 객관적인 이야기로 확산시키지 못하고 심리 진술 등 자폐증에 빠져 '넋두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시부문 응모작에서는 예년과 달리 사회문제에 대한 당위론적 목소리의 시들이 많이 줄어든 게 우선 눈에 띄었다. 응모 여성시에서 많이 드러났던 위악적인 엽기성, 도발적인 성적 은유도 많이 누그러졌다. 대신 자신의 삶과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잔잔한 성찰, 도시적 삶에 대한 능숙한 시적 변용, 자연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을 보여주는 응모작들이 많아 시의 앞날을 밝게 했다.

산문시 응모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나 그 내용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산문을 행가름만 멋들어지게 해놓았다고 시가 되는 것이 아니듯, 시적 깨달음의 응축이나 율격.호흡이 없는 것은 띄어쓰기도 없이 늘어놓았다고 의미 있는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평론 응모작들은 지금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한 작품을 분석한 작품론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예 작가들의 작품 분석과 평가에 과감히 뛰어들고 있는 게 특징이었다.

또 난해하지만 박상륭의 종교적.철학적 소설, 이인성의 형식적 실험소설에 뛰어들며 사이버 시대 문학의 존재 이유와 품위를 밝혀내려는 응모작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번에도 12세 초등학생부터 80세 노인까지 응모했다. 소설만 8편을 응모한 사람도 있었고 시집 한권 분량보다 많게 50편 이상을 낸 시 응모자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한사람이 이렇게 많은 작품을 응모하면 심사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다. 자신의 작품에 자신감을 갖고 정선해 보내는 것이 낫다.

20편 남짓을 고르는 예심을 통과하려면 작품이 비등점에 올라야 한다. 섭씨 1백도에 올라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물방울이 보이듯 심사위원들 눈에는 작품의 끓어오르는 물방울이 보인다. 응모자가 작품을 통해 들려주려한 물방울 같은 그 무엇이 확실이 들어 있어 자신만의 목소리로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에야 비로소 예심을 통과할 수 있다. 제2회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은 21일 본지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경철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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