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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한반도 운명의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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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30m쯤 앞에 김정일 위원장이 앉았다. 오른쪽에는 올브라이트 장관, 왼쪽에는 웬디 셔먼 대북조정관이 앉았고 백악관·국무부 관리들도 함께했다. 김 위원장 등뒤로 권총을 찬 경호장교 2명이 서있었는데 눈매가 독사처럼 매서웠다. 매스게임의 주제는 김일성·김정일 찬양, 핵개발을 암시하는 핵분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 등이었다.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군인 수백 명이 대검을 꽂은 총으로 총검술을 하더니 갑자기 본부석을 향해 “와” 함성을 지르며 수십m를 돌진해 왔다. 카드섹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건드리는 자, 이 행성 위에서 살아남을 자 없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기 위해 한국과 국제사회는 화해·포용 정책을 폈다. 그러나 북한은 철저히 기만했다. 공산주의자는 테이블 위의 손과 테이블 밑의 발이 다르다고 한다. 그런 이중성에서 북한은 가장 웅변적인 존재다. 제네바 핵 동결 합의, 6자회담, 남북정상회담은 결국 모두 제스처에 불과했다. 그들의 속내는 체제유지와 핵개발을 위해 시간과 달러를 버는 것이었다. 그들은 충분히 벌어 핵무장에 성공했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에 바람을 넣으려 했으나 철저히 실패했다. 북한은 왜 바람을 거부할까. 같은 공산국가인 중국과 소련은 개혁·개방에 성공했다. 북한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이는 덩샤오핑이다. 그가 김일성과 다른 점은 우상숭배와 부패가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덩샤오핑 권력에 우상숭배와 부패가 있었다면 89년 6월 천안문(天安門) 민주화 시위가 혁명으로 발전했을지 모른다. 군대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해도 인민이 봉기하지 않은 건 덩샤오핑의 도덕성이 건재했기 때문 아닐까.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마지막 공산당 서기장이자 첫 대통령이었다. 85년 서기장에 선출된 후 그는 개혁과 개방을 선도했다. ‘철의 장막’ 소련에서 그가 모험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우상숭배와 부패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일성-김정일 세습정권은 덩샤오핑이나 고르바초프처럼 할 수 없다. 그들을 수정주의(修正主義)라고 비난하면서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집했지만 북한은 개혁·개방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다. 그들에겐 우상숭배와 부패라는 치명적인 취약점이 있다. 개혁으로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개방으로 외부의 문물이 유입되면 인민은 세상의 진실에 눈을 뜨게 된다. 인민이 우상숭배의 허구를 깨닫고 부패에 분노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 정권은 구조적으로 개혁·개방이라는 소프트 트랙(soft track)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는 그런 고립정권의 마지막 몸부림일지 모른다. 9·11 이전과 이후가 다르듯이 천안함 이전과 이후도 달라야 한다. 이제 한국은 북한정권의 숙명적인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김정은에게는 권력과 함께 우상숭배와 부패도 세습될 것이다. 3대 세습정권에 개혁과 개방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은 냉엄한 현실 위에서 대북지원·급변사태, 그리고 통일에 대한 정책을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들도 곧 변하겠지”라는 환상은 백령도 바다에 묻어야 한다. 천안함은 많은 걸 말해주고 있다. 처절하게 찢어진 그 배는 한반도에도 운명의 순간이 곧 닥칠지 모른다고 말해주고 있다.

김진 논설위원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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