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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에세이] 강태진 씽크프리 사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5면

나는 한달 중 열흘 정도를 실리콘밸리에서 보낸다. 2년 전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본사를 실리콘밸리로 옮겼지만 당시와 지금은 분위기가 너무 달라 불과 2년의 세월이 흘렀을 뿐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열명이 넘는 인원이 좁은 아파트에서 북적거리며 일하다 몇 달 만에 구했던 사무실이 이제는 우리가 내는 월세의 절반에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영업 담당으로 일하는 스탠포드 MBA 출신의 미국인 친구는 자신의 동기 중 인터넷 기업의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던 7명이 모두 실직상태라고 했다. 이들은 지난해 초만 해도 엄청난 스톡옵션을 주고도 모셔오기 힘들었던 귀하신 몸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스톡옵션 때문에 알거지가 되는 사람들 또한 많아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회사가 상장을 한 후 보유하고 있던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식을 인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인수한 주식을 주가가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매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다. IT산업이 침체되면서 주가는 옵션 행사가격 이하로 떨어졌지만 세금은 주식인수권 행사 당시의 주가와 행사가의 차액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바람에 실제로 금전적 손실을 본 사람들이 엄청난 금액의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주가는 계속 오르기만 했기에 이런 상황에 대해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다가 하루 아침에 엄청난 빚을 지게 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봄에는 실리콘밸리의 초고속 통신망 사업자 두 곳이 파산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인터넷 접속을 할 수 없게 됐던 일이 있었다. 전력 회사들의 경영난으로 정전 경고가 심심찮게 발표되기도 한다. 실제로 근무시간 중 우리 사무실도 세시간 가량 전기가 나간 적이 있고 아들의 농구 시합이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중단된 적이 있다. 세계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이라고 하는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IT산업의 눈부신 발전과 잇따른 성공신화로 부의 환상에 취하게 했던 실리콘밸리. 그러나 지금은 그 뒷면에 숨겨져 있던 불안정성과 패자에게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논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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