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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러고도 국면전환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의 내각 잔류→한광옥(韓光玉)청와대 비서실장의 민주당 대표 내정→9.7 개각으로 이어진 숨가쁜 인사 과정은 상식을 깨는 반전(反轉)과 무리수가 드러난다. 李총리를 주저앉히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인지 순리와 차분함보다 무언가에 쫓기듯 개편이 진행되는 느낌마저 준다.

그러다 보니 당정 지도부 포진의 모양새가 어색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당연히 여러가지 악성(惡性)의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는 용인술(用人術)이다.

후유증은 먼저 여론 비판으로 나오고 있다. DJP 결별 이후 소수정권의 어려운 처지를 돌파하기 위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정의 면모쇄신을 위해 전면적인 당정개편을 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국민의 기대섞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정치도의를 이탈한 李총리의 곡예정치에 이어 청와대 비서실장의 민주당 지휘부 입성은 그런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金대통령의 이런 선택에는 여소야대 정치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고심(苦心)이 깔려있다는 게 여권의 설명이다.

새 총리를 임명할 경우에 야당이 잡고 있는 국회의 임명동의안이라는 장애물, 다양한 성향의 당내 대선주자 관리문제를 이유로 들어 '이한동-한광옥' 체제의 불가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판단과 접근자세는 다수 여론의 지지를 얻기 힘들게 돼 있다. 당장 민주당 의원들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면서 권력쪽 내부의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당내 민주화와 개혁정치' 와는 정면 배치된다는 게 민주당 일부 초선의원들의 불만이다. 韓실장이 정치적 유연성과 타협의 두터운 면모를 갖췄지만 탈당의 소리가 나올만큼 민주당 일각의 거친 실망감을 조기에 무마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 후유증은 정국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민련은 李총리를 제명하면서 DJ와 정면대결을 선언했고, 한나라당은 'DJ식 오기(傲氣)인사' 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이한동-한광옥' 체제가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당정개편이 있으면 8.15 평양축전 혼선으로 시작된 정국 소용돌이와 국정 불안이 멈춰질 것이라는 국면전환의 희망과는 반대쪽으로 정국상황이 굴러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5개 부처 장관을 바꾼 개각도 질.양 모두 보각(補閣)수준의 땜질 인사다. 정책 추진의 일관성을 내세우나 국정쇄신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안정남(安正男)국세청장을 건설교통부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부적절하다.

항공안전 2등급 판정파문과 DJP 공조와해로 보름새 장관 두명이 바뀐 어수선함을 씻기 위해선 적재적소의 인선이 필요한 곳이 건교부다. 항공위험국 딱지가 전문성을 외면한 장관 인사 탓이라는 진단도 있었다.

그런데도 安청장을 항공정책의 책임자로 앉힌 것은 공직사회의 그런 주문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언론 탄압공방의 한복판에 있는 인물을 '발탁' 의 형태로 기용한 것은 또다른 후유증을 낳을 우려가 있다.

인사는 통치자가 국민과 가까이 할 수 있고 야당을 설득하면서 정책의 추진력을 높이는 국정 운영의 확실한 수단이다. '인사가 만사(萬事)' 라고 하는 것은 민심수습과 국정관리의 그 같은 효용성 때문이다.

이번 인사는 그런 통치의 위기관리 수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자기방어의 친정(親政)체제, 밀어붙이기식 인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金대통령이 남은 임기 1년6개월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를 검토해 내린 인물 포진이지만 국정 혼선의 극복보다 국정 부담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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