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극장경영과 공연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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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최근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공연예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몇해 전 줄리아드 음대에서 실기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술경영 강의를 신설했다.

마케팅 마인드는 매니저 뿐만 아니라 연주자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관객과 예술가(예술단체)가 만나는 '마당' 이자 공연 작품을 담아내는 '그릇' 인 극장(공연장)은 첨단 예술경영 기법의 실천장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1987년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 지난 6월까지 공연장운영팀장을 맡아온 저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극장경영과 공연제작』은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인 예술의전당의 '고민' 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다소 딱딱하기 쉬운 공연 마케팅 이론서에서 탈피해 생생한 현장 체험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곁들여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책에 빼곡이 담겨진 그런 대목들을 따라가다 보면 최근 10여년간 국내 공연예술의 트렌드까지 읽어내는 덤까지 얻을 수 있다.

또 이 책은 '극장과 공연예술' '극장의 운영' '공연제작' '공연마케팅' '홍보' '펀드레이징' 등 공연장의 주요 업무를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지침서로 봐도 무방하다. 극장에 종사하는 사람은 물론 공연장의 '고객' 이랄 수 있는 예술단체나 문화재단, 나아가서는 같은 경영을 하는 기업에서도 읽어볼 만하다.

지금까지 예술경영에 대한 책이 적잖이 나왔지만 외국 이론의 소개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극장경영과 공연제작』은 이와 달리, 국내 공연계 상황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적용이라는 면에서 돋보인다. 어떤 공연을 어느 시기에 올리면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은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사례가 풍부하다.

하지만 극장의 유형 분류와 극장의 운영방식 분류가 내용 면에서 상당부분 겹치고, 극장 운영도 시설관리와 대관업무 등에 치우쳐 있는 등 미진한 점도 눈에 띈다. 공연제작이나 관객 개발에 대해 명쾌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일간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이나 공연장 운영에 관련된 일간신문의 스크랩을 박스물로 그대로 실어놓은 것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있긴 하지만 본문의 흐름을 끊어 놓는 경우가 많다.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담으려다보니 대충 지나가는 부분도 많고, 공연 실무자들에 대한 상세한 매뉴얼은 풍부하지만 좀 거창하게 말해 극장경영의 철학이나 일상적 업무의 방법론를 넘어선 장기적인 비전 같은 것은 엿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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