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부문도 경쟁체제로 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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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숲 속에 있을 때는 숲이 보이지 않지만, 숲을 벗어나면 숲의 모습이 잘 보인다고 한다. 공공부문에서 민간부문으로 옮기면서 많이 고민했던 필자도 전직 후 공공부문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직업을 바꾼 뒤에도 변함없이 느끼는 것은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한국의 공공부문이 매우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 때 경제발전의 견인차로서 역할을 자타가 인정했고 지금도 불철주야 일하는 공공부문의 많은 인재들이 직무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가? 구성원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잘못돼서 발생하는 '시스템 실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 이 현상이 발생하는가.

첫째,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그 원인이다.

지식기반 경제라는 거대한 물결은 기존 리더십의 개념을 새로이 정의할 것을 요구한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각 부문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위.관계.규정.규제 등에 의한 리더십이 아닌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리드하는 지적(知的)리더십이 필요하다. 계층적 리더십이 아닌 지적 리더십 아래서는 지휘하고 복종하는 관계가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를 제공해 협력하는 윈-윈(win-win)관계가 성립한다.

또 하나의 큰 환경변화는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상의 제품을 만드는 것 못지 않게 수요자, 즉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옷이나 책이 아닌 음식이다. 고객지향적 행정이 되기 위해서는 책상 앞에서 고민하기보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일을 해야 한다. 수출 현장, 금융 현장에 직접 나가서 근로자들의 땀.지식.경험을 느껴야 한다.

시스템 실패가 일어나는 두번째 이유는 공공부문이 갖는 독점적 성격 때문에 경쟁이 촉진되기 어렵고 이것이 여러 가지 비효율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비효율은 시간이든 인적자원이든 비용개념이 없다. 경쟁이 있으면 더 적게 투입하고 더 많은 산출물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비용개념에 철저하게 된다. 비용개념이 확립되면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열정을 소비하지 않는다. 또 절차를 간소화해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게 된다.

문제는 현실이 경쟁체제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기존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공공재 성격이 매우 강한 교도소도 이제는 민영 교도소와 경쟁해야 하고,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면 기능이 민영 교도소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시스템 실패의 세번째 요인은 직무 기술(記述)이 명확하지 않고 인력 배치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부적절한 자리에 배치되면 불만을 갖게 된다. 이는 조직 측면에서 일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적확한 직무 기술과 그에 따른 인력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조직 구성원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고 조직의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그밖에 충분하지 못한 경제적 보상과 인사적체 등도 시스템 실패의 중요한 요소다. 물론 민간부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역할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는 공공부문이 시스템 실패를 개선해 나간다면 민간부문과 상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더 큰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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