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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 중국] 3. 상하이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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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섰던 상하이(上海)시 마당루(馬當路)의 일반 주택가. 폭이 4m 남짓 될까 말까한 작은 골목인 리눙(里弄)을 끼고 상하이의 전통 주택인 석고문(石庫門)이 늘어서 있다. 베이징의 전통주택 사합원이 즐비한 후퉁(胡同)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가옥 전체가 골목을 향해 열려 있고 다세대가 모여 사는 주택 앞에는 일종의 사교마당인 '눙탕(弄堂)' 이 형성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이웃과 만나 생활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돈벌이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주택의 배열도 길을 따라 옆으로 늘어선 서양방식과 유사하다.

네 면이 모두 벽으로 둘러쳐진 사합원이 닫힘과 격식, 보수성을 나타내는 베이징(北京)식 경파(京派)문화의 커다란 특색이라면 이 석고문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해파(海派)문화의 상징이다. 가옥구조가 밖을 향해 열려 있듯 석고문이 대표하는 상하이의 문화는 개방지향형이다. 3백여년 전에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상하이는 고대부터 북방에서 장강 이남으로 옮겨 온 한족(漢族) 이주.개척사의 총화에 해당한다.

"상하이의 가장 큰 특징은 이주(移住)문화다. 따라서 분위기는 개방형이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혼합형이다. 상하이 문화의 이같은 면면들은 전통주택인 석고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섞여 살면서 남들과 열심히 교제하고 바깥 문물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데 열심이다. " 레저.음악.문화 등을 다루는 상하이 '가일주간(假日週刊)' 구이리(顧亦禮)편집국장의 설명이다.

'상하이' 라는 지명 자체가 매우 시사적이다. 이 말은 '바다로 나아가자' 라는 뜻이다. 만리장성과 사합원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자신의 정체성에만 집착하는 북방의 문화와는 본질에서 차이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顧주간은 이렇게 덧붙인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상하이를 중심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는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현실적이면서 실용적인 상하이 사람들의 기질은 북방 사람들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다.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상하이 사람들은 중국의 개혁.개방에 가장 적합하다. "

실제 상하이는 제국주의가 동점(東漸)할 때 동양과 서양이 마주치는 교차점에 서 있었다. 영국 등의 조차지가 되면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 '잠든 중국' 을 일깨우는 일종의 창구였다. 따라서 상하이는 현대 중국 개혁.개방의 간판이자 구심점이다.

이런 상하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은 지금으로부터 4백년 전 사람인 서광계(徐光啓). 명(明)대 관리였던 그는 유명한 유럽의 전도사 마테오 리치와 만나 교우하면서 『기하원본』을 번역하는 등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상하이대 선이훙(沈益洪)교수는 "서광계는 오늘날 상하이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는 역사 속의 인물이다. 당시 중국 문명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던 그의 행적을 통해 요즘의 개혁.개방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고 말했다.

상하이 사람들의 기질은 한 마디로 말해 실용적이다. '세상 이치에 매우 밝고(精明世故), 처세에 매끄러우면서 여러 얼굴을 지녔으며(圓滑多面), 사소한 것까지 따지는(斤斤計較)' 타입이다.

베이징 사람들이 돈보다는 정치적 사안에 관심을 많이 두는 데 비해 상하이 사람들은 "귀족이 되는 꿈보다는 부자가 되는 꿈을 꾸고 싶다" 는 태도를 보인다.

따라서 이해타산에 밝고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다닌다. 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이곳 저곳 기웃거리기를 좋아한다. 상하이 사람들의 길거리 행보는 '당마루(蕩馬路)' 라고 한다. 하는 일이 없으면서도 어디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웃기웃하며 다니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비해 베이징 사람들의 산보는 '류다(溜達)' 라고 하는데,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하고 호수나 공원 등 한적한 곳을 찾아 걸어다니는 게 차이다.

상하이 사람들이 이처럼 현실에 기울이는 지대한 관심은 이곳 특유의 상업문화를 낳았다.

태평천국 시기 중국 남부의 재부(財富)를 쓸어 모으다시피 했던 호설암(胡雪巖)과 중국 제1의 매판자본가 목병원(穆炳元), 선대의 방직업 전통을 이어받아 1980년대 부총리 자리에 올랐던 '붉은 자본가' 룽이런(榮毅仁) 등이 이곳 출신이거나, 아니면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한 사람들이다.

상하이를 포함한 장쑤(江蘇).저장(浙江) 등 화동권의 상업은 중국 내에서 알아준다.

우선 고려시대 개성 상인들과 거래했던 닝보(寧波)의 상인들은 아직도 중국 내에서 명망이 높다. 저장성 남부의 원저우(溫州)사람들은 베이징의 훙차오(虹橋)시장을 석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쓰촨(四川)성을 비롯한 각 내륙지역의 상권을 휩쓸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상하이 무역관 양장석 차장은 "현실 적응력이 뛰어나고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는 점이 이곳 상업문화의 특성이다. 원래 발달한 수공업적 기반 위에서 발빠른 변화를 추구하며 중국 내에서 가장 왕성한 상업적 발전을 보이고 있다" 고 말했다.

상하이권 사람들의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이는 과도할 정도의 현실집착은 가끔 비판대에 오르내린다. 이른바 '상하이 도시병' 이다. 우선 상하이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돈 벌기에 매달린다.

이러한 상하이 사람들에게는 '빈혈(貧血) 신사' '세리안(勢利眼 : 권세나 재물에 빌붙는 사람)' 등의 별명이 따라붙는다. 예의는 깍듯이 지키지만 작은 이익에 너무 연연하는 상하이 사람의 속성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눈 앞에 이권을 두고도 다른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상하이 사람들에게서 "당신 아무래도 상하이사람 같지 않은데" 라는 핀잔을 듣는다.

가정생활에서 나타나는 상하이 남자들을 비꼬는 말은 '마다싸오(馬大嫂 : 마씨 형수님)' 다. 아내를 대신해 '재료를 사고(買), 쌀을 일고(淘), 요리를 한다(燒)' 는 데에서 앞글자의 음을 비슷하게 따다 붙인 것이다. 그래서 상하이 남자들에게는 '소생(小生 : 풋나기)' '재자(才子 : 재주 있는 사람)' 라는 평이 따라다닌다. 북방의 남자다운 사내를 일컫는 '대한(大漢)' 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상하이 푸둥(浦東)의 발전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현대 중국 개혁.개방은 상하이 사람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그 배후에는 물질적으로 '석고문' 이라는 주택, 정신적으로는 4백년 전 중국 문명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고민한 뒤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서광계라는 두 개의 상징이 버티고 서 있다.

*** 華東의 요리

상하이를 포함한 장쑤.저장의 이른바 화둥지역은 바다와 양쯔강, 시후(西湖).타이후(太湖)등 대형 호수, 평원을 끼고 있어 예부터 생선과 쌀이 매우 풍부하다는 의미의 '어미지향(魚米之鄕)' 이라 불렸다.

이 곳 음식은 중국 4대 요리의 하나로 일명 '회양채(淮揚菜)' 다.

물산이 풍부하고 이 곳을 거쳐간 역사적 인물들이 다양해 요리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요즘 한국 내에도 잘 알려진 요리로 동파육(東坡肉)이 있다. 이는 두껍게 썬 돼지삼겹살에 간장.초.술 등을 넣고 8시간 이상 삶아낸 요리로, 송대의 문인 소동파가 항저우(杭州)에서 벼슬살이를 할 때 직접 만들어 후세에 남긴 음식이다.

청(淸)대 대학자인 원매(袁枚)는 항저우 근처에 살면서 이 곳 음식과 남북요리를 총 정리해 『수원식단(隋園食單)』이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다. 청대 건륭제는 강남지역을 순시할 때 이 곳 음식이 마음에 들어 요리사를 직접 궁중에 데려와 회양채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쌀이 많이 나와 이를 재료로 만든 소흥주(紹興酒).진강초(鎭江醋)와 용정차(龍井茶)가 매우 유명하고 요리에서 이들을 직접 사용한 것도 꽤 많다. 전체적으로 재료가 다양하며 요리의 색깔이 화려하다. 요리법으로는 찜과 중탕(燉)법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발달했다.

장쑤성 쑤저우(蘇州)요리는 재료를 우려낸 소스를 많이 쓰는데, 물이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원탕(原湯)으로 요리의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식점 등에서 동냥한 닭고기를 거지들이 가져다가 흙으로 겉을 발라 구워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규화계(叫化鷄)' , 돼지 다리고기를 절여 만든 금화화퇴(金華火腿)등도 화동지역 요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특별취재반 유광종 문화부 기자·유상철 베이징특파원·진세근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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