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행동 '밑빠진 독 상' 시행 1년 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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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낭비를 두눈 부릅뜨고 감시하겠습니다. "

매달 예산을 낭비한 정부나 지자체에 '밑빠진 독 상(賞)' 을 선정, 수여하는 함께하는 시민행동 예산감시팀. 지난해 8월 말 제정된 이 상은 1년이 지나면서 이제 시민 예산감시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국제 환경박람회 사업을 추진했던 하남시, 8백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설하려 했던 월드컵 '천년의 문' , 무궁화 개화 사업을 추진한 행정자치부,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청초호 유원지 사업을 벌였던 속초시 등이 그 수상자들이다.

이 중 하남시의 국제환경박람회 사업과 천년의 문 건설 계획 사업은 시민행동의 노력과 캠페인으로 계획 자체가 백지화됐다.

'밑빠진 독 상' 에 선정된 정부 부처나 지자체에는 상패와 함께 깨진 독을 수여한다. 불명예스러운 상이기 때문에 수상 대상이 상을 거부하거나 자리를 피하는 일도 다반사다.

상을 주러 간 중앙 정부 부처에서 아예 들여 보내주지 않아 정문 앞에 독을 들고 2~3시간씩 서 있기 일쑤. 상을 안받겠다는 공무원들과 실랑이를 하다 30여분씩 몸싸움을 벌인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수상 대상을 선정하기 위해 정부의 각종 보고서, 지역 신문 보도 등을 상시 모니터하는 것은 이들의 기본업무다. 지역별 시민단체와 공무원들, 인터넷 게시판(http://www.ww.or.kr)에 올라온 일반 시민들의 제보도 큰 도움이 된다.

일단 후보가 선정되면 정보공개 청구, 의회 속기록, 보도자료 등을 이용해 예산 사용 현황을 파악한다. 이같은 자료를 가지고 변호사.회계사.교수 등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 회의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하는 데는 최소한 한달이 걸린다.

지난 6월에는 모 지자체의 사업에 대해 자료 수집과 회의까지 마치고도 "근거가 부족하다" 는 내부 반대로 선정 하루 전날 수상을 취소하기도 했다.

'밑빠진 독 상' 이 언론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다 보니 관련 기관의 대응도 다양하다. 수백억원대의 예산 낭비로 수상자에 선정됐던 모 지자체장의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선정된 정부기관이 선정 이유와 근거를 조목조목 밝히라고 자료 요청을 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 예산 감시활동을 계속해 달라" "시민행동의 활동 덕분에 예산을 낭비하는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는 시민의 격려가 큰 힘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하승창(河勝彰)사무차장은 "앞으로 시민들의 제보 네트워크를 만들어 예산 감시 운동을 확대하고 규모가 큰 정부의 국책사업도 감시해 나갈 계획" 이라고 말했다.

후원금 계좌 : 조흥은행 325-01-167213 함께하는 시민행동. 전화 02-765-4708.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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