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식 '황당액션' 동작그만… '무사' 세계 겨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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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요즘 TV는 사극(史劇)의 전성시대 - .

'여인천하' (SBS)와 '명성황후' (KBS)가 나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사극의 주인공격인 문정왕후와 명성황후의 능(陵)이 서울시내와 근교에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태릉(泰陵.문정왕후의 능)과 홍릉(洪陵.명성황후의 능)을 둘러보면 역사를 알고 드라마를 보는 재미도 키울 수 있다.

◇ 사실적 영상에 충실= '무사' 는 한국영화론 역대 최대 제작비인 70억원을 들인 블록버스터다. 흥행을 염두에 두는 큰 작품의 특성상 당연히 볼거리로 무장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각종 무술에 능통한 무사들의 향연이지 않은가.

그런데 '무사' 의 전략은 다소 의외다. 중국 무협영화나 할리우드 대작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지붕을 훨훨 날고, 대나무 숲을 제압하는 '와호장룡' 의 화려함이나 벽을 타거나, 공중에서 유영하는 '매트릭스' 의 현란함을 포기했다.

"세계를 겨냥한 까닭에 차별성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외국을 흉내내면 절반도 못갈 것 같았다" 는 게 김성수 감독의 설명. '비천무' 처럼 홍콩영화의 답습을 사양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무협영화의 등록상표인 와이어 액션(배우를 피아노선에 매달아 움직이며 동작을 극대화)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원(元).명(明)교체기, 고려 말기란 시간적 공간이 분명한 시대극이기에 사실적인 영상에 주력했다.

이마를 뚫고드는 창, 머리를 단숨에 베어내는 칼, 등판을 관통하는 화살 등 객석을 경악케 하는 충격 효과를 동원하는 동시에 전투에 임한 장수와 병사들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와 땀방울까지도 극사실적으로 낚아채며 긴장도를 높였다.

그러나 물량 위주의 할리우드식 대작에 익숙한 관객에겐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중국을 무대로 한 스케일의 확장과 더불어 황당무계한 공상적 무협신을 거세한 '무사' 의 시도는 분명 긍정적이다" 고 말했다.

◇ 무기와 인물의 일치= '무사' 의 주인공은 아홉명이다. 한 두명의 영웅담에 의존하는 일반 흥행작과 달리 등장 인물 전체를 고르게 조명하는 서사적 구조를 따른다. 때문에 드라마가 분산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단점을 노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의 전매특허인 영웅화.신화화를 거부한 태도는 높이 살 만하다.

6백여년 전의 전장을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재현하려는 노력과 함께 등장 인물들의 인간적 나약성, 심리적 공포 등을 담아내려고 했다.

주요 배역들이 무공이 하늘을 찌르는 중국식 협객도 아니요, 주군에 목숨을 바치는 일본식 사무라이가 아니기 때문. 긴박한 비트 대신 서글픈 여운을 강조한 사기스 시로의 음악도 이런 분위기를 떠받친다.

공격 거리가 가장 긴 활은 긴박한 전투에 냉철하게 대처하는 진립(안성기)에게, 근접전에서 유리한 칼은 사태 판단력이 빈약한 젊은 장군 최정(주진모)에게, 또 그 중간 거리에서 위력이 있는 창은 자유인을 꿈꾸는 노비 출신의 여솔(정우성)에게 배정하는 등 인물과 무기의 성격을 합일시킨 세심한 연출이 돋보인다.

◇ 전쟁의 본질은 허망= '무사' 의 절반 이상을 점령한 전투신을 보고 나면 어쩐지 허탈하다.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모호한 부질 없는 싸움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감독은 고속.저속촬영,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와이드샷, 정지화면과 흔들리는 영상을 뒤섞으며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하지만 고려인들의 승리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31일 개봉하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에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베트남전을 무대로 전쟁의 도덕성을 질문했듯 목숨이 걸린 전쟁터에 내몰린 사람들의 공포와 절망감에 방점을 찍으려고 한다.

그래서 전체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는 "과다한 무협신이 중압감을 준다. 감독의 작가적 야심이 많이 들어갔다" 고 평했다.

이에 김감독은 "피아 구분이 어려울 만큼 화면을 빨리 돌리고 근접 촬영에 무게를 실었다. 전쟁은 원래 그런 게 아닌가" 라고 대답했다.

'무사' 는 '쉬리' 이후 쌓인 한국영화의 자신감이 결집한 작품. 무대를 중국으로 넓히며 역사 무협물이란 장르를 개척했다.

반면 초인간적 영웅, 단순한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블록버스터의 공식에서 비켜간 '무사' 가 어떤 반응을 얻을지….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의 경쾌한 웃음에 열광했던 관객들의 시선 변화가 주목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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